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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임다영은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애초에 오늘은 연시윤에게 돈을 받으러 온 것이었고 계약서 조항대로라면 그의 모든 요구에 협조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몰골은 너무나 초라했다. 이 꼴로는 남자가 흥미를 느낄 리 없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구석구석까지 꼼꼼히 씻었다. 그러다 허리에 새겨진 흉터가 시야에 들어오자 흠칫했다. 어릴 적 일은 흐릿하기만 했다. 임씨 가문의 말에 따르면, 10년 전 문주를 뒤흔든 대규모 유괴 사건이 있었고 그녀는 그때 구출된 아이 중 하나였다. 그 덕분에 임씨 가문이 그녀를 입양했고 사람들에게 ‘선행’이라며 칭송받았다. 허리에 남은 흉터는 바로 그때 생긴 상처였다. ‘이걸... 연시윤이 보게 된다면? 분명 비웃겠지.’ 그녀의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흔들렸다. 뜨거운 수증기 속에서 머리가 멍해지더니, 어느새 쓸데없는 생각에 잠겨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거실 소파에 앉은 연시윤은 손끝 돌리며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여자는 끝도 없이 들러붙는군. 매번 내 앞에 나타나서 계약 이행을 요구하고... 그런데 왜 하필 이런 여자가 내 신경을 건드리는 거지? 젠장.’ 30분이 지나자, 그는 손목시계를 흘끗 보았지만 아직도 욕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임다영!” 풀어헤친 와이셔츠 목을 거칠게 잡아당기며, 그는 낮고 날 선 목소리로 임다영을 불렀다. “얼마나 더 씻을 거야? 당장 안 나와?” 그때, 욕실 안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터졌다. 욕조 속에서 눈을 뜬 임다영은 숨을 헐떡였다. 꿈이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또다시 임씨 가문의 손아귀에 붙잡혀,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다 불길 속으로 내던져졌다.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야 현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욕조의 물은 이미 미지근하게 식어 있었다. 막 몸을 일으켜 나가려던 찰나, 욕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문틀에 기대선 연시윤이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임다영, 또 무슨 짓을 꾸미는 거야?” 욕조에서 막 한 발을 내디디던 순간, 문을 박차고 들어온 남자를 본 임다영은 놀라 발을 헛디뎠다. 바닥에 세게 부딪히는 걸 각오하고 눈을 질끈 감았지만 곧 연시윤의 팔이 그녀의 몸을 낚아채 부드럽게 받쳐줬다. 숨을 내쉬며 안도한 것도 잠시, 자신이 실 한 올 걸치지 않은 상태라는 걸 깨닫는 순간, 임다영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두 팔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감싸 쥔 채, 그녀가 숨 가쁘게 외쳤다. “왜... 왜 들어왔어요?” 연시윤이 비웃음을 흘렸다. “임다영, 연기 한 번 잘한다. 아까 비명 지른 거, 너 아니야?” 혹시 무슨 일이 난 줄 알고 달려왔는데, 욕실에 들어서 보니 이번에도 그의 눈에는 그저 남자를 유인하려는 수작 중 하나로 보였다. 그의 품 안에서 전해지는 체온, 강한 남성적인 기운과 은은한 담배 향이 그녀의 감각을 마비시켰다. 멍한 정신에 그의 비아냥은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이 돌아온 임다영은 그를 힘껏 밀어냈다. 서둘러 욕실 선반에 걸린 수건을 움켜쥐어 몸을 감쌌고 허리의 흉터까지 가렸다. “저... 일단 나가주세요.” 임다영의 말소리가 떨렸다. 연시윤의 시선이 그녀를 위아래로 훑었다. 마른 팔, 손에 쥐면 부서질 듯한 여린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도 그 가냘픈 몸으로 당돌하게 고개를 들고 단단한 눈빛으로 ‘나가라’며 맞서는 모습에 그는 코웃음을 흘렸다. “나가라고? 임다영, 충고 하나 하지. 요망하게 밀고 당기는 장난은 오래 하면 질린다.” “저... 그런 거 아니에요!” 그녀가 급히 해명했다. “아까는 그냥... 잠깐 잠들었는데 악몽을 꿔서...” 하지만 그는 대답 대신 천천히 다가와 그녀를 벽 쪽으로 몰아붙였다. 단단히 다문 입술과 위태롭게 가늘어진 눈매, 그리고 낮고 거친 숨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이제 연극은 그만하지?” 그의 손이 그녀의 턱을 거칠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몸을 숙인 낮고 서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만약 나를 유혹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축하해, 성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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