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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빌어먹을 계집, 감히 내 머리를 내리쳐 기절시켜?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았어?’ 하마터면 치명상을 입고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던 안중식은 수치와 분노가 한꺼번에 치밀어 올랐다. 그는 이를 갈며 땅을 뒤집어엎는 한이 있더라도 임다영을 찾아 갈기갈기 찢어 죽이겠다고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그런데 눈앞의 차량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안중식이 더욱 성이 나, 부하들에게 차를 부수라고 신호를 주려던 찰나 차 안에서 들려온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그를 멈춰 세웠다. “허... 요즘 세상에 감히 내 차를 가로막는 놈이 있네?” 익숙한 목소리에 안중식은 본능적으로 목을 움찔하며 차 안을 들여다봤다. 그 순간, 연시윤과 눈이 마주쳤다. 매서운 매의 시선처럼 꽂히는 그 눈빛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리고서야, 방금 자신이 가로막은 차가 문주의 ‘저승사자’ 연시윤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 대표님?” 안중식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오해입니다. 정말 오해예요. 저희 바로 가겠습니다!” 그의 손짓에 부하들이 황급히 길을 비켰다. 차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연시윤이 탄 차가 사라지자, 안중식은 이를 악물고 명령했다. “계속 찾아! 그년은 멀리 못 갔을 거야. 지나가는 모든 차를 세워서라도, 반드시 잡아 와!” 그는 임다영이 조금 전 연시윤의 차 안에 앉아 그의 코앞을 태연히 지나쳤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내려.” 연시윤의 목소리에 차 안 공기가 다시 얼어붙었고 임다영은 얼른 몸을 옆으로 돌려 그와 거리를 뒀다. 혹시 무슨 말을 이어갈까 싶었지만, 연시윤은 창밖만 바라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그녀를 안도하게 했다. 잠시 후, 차는 보육원 앞에 멈췄다. 임다영은 연시윤이 보육원을 찾은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내심 의아했다. 운전기사가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와 고개를 저었다. “대표님, 이미 자리를 비운 것 같습니다.” ‘보육원에 찾는 사람이 있는 건가?’ 임다영은 은근히 궁금했지만, 속마음이 새어 나가기 전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연시윤, 사실은 제가 보육원에서...” ‘보육원에서 봉사하고 있어요. 궁금한 건 저한테 물어보셔도 돼요.’ 그 말을 다 뱉기 전, 연시윤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임다영, 여기서 내던져 버리기 전에 입 다물고 조용히 해.” 그녀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차는 보육원을 벗어나 방향을 돌렸다. 운전기사가 물었다. “대표님, 회사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본가로 갈까요?” 연시윤은 눈을 감았다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별장으로 가.” 임다영은 연시윤이 말한 주소가 바로 자신이 사는 곳이라는 걸 알아차리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연 대표님, 굳이 거기까지 데려다주실 필요 없어요. 저는 버스 타고...” “혼자 드라마 찍네.” 연시윤이 비웃음을 흘렸다. “별 수작 다 부리네. 이렇게 시내 변두리까지 쫓아와서 길을 막은 게, 나랑 같이 별장으로 돌아가려는 속셈 아니었어?” ‘목적을 이루려고 차까지 가로막고 일부러 내 품에 쓰러져 유혹까지 한다니. 더 불쾌한 건... 그 수작이 통했다는 거다. 결국 이 여자가 지금 내 병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라는 사실이 증명돼 버렸으니.’ “정말... 우연이었어요.” 연시윤은 눈가에 냉소를 띠며 그녀를 훑어봤다. “앙큼하게 밀당까지 하네? 제법 재밌는 수작질이네.” 임다영은 자신이 아무리 해명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아채고 굳이 더 말할 생각도 없었다. ‘오해해도 상관없어. 처음부터 연시윤 비위 맞추려고 시작한 일도 아니니까.’ 30분 뒤, 차는 별장 앞에 멈췄다. 임다영은 서둘러 내려와 방으로 올라갔다. 문을 닫으려는 순간, 연시윤의 큼지막한 손이 문틈을 거칠게 비집고 들어왔다. “계약서 내용, 벌써 잊었어?” 연시윤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넌 내 병만 치료하면 돼. 이런 애태우는 장난은 내 인내심만 갉아먹을 뿐이야.” 임다영은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오늘은 피하기 힘들겠구나.’ 연시윤은 임다영을 벽 모서리에 몰아세운 채, 옷깃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대체 이 여자가 어떤 수로 매번 나를 귀신에 홀리듯 무너뜨리는지, 오늘 직접 확인해야겠어.’ 그러나 어깨에 번져 있는 짙은 멍이 눈에 들어오자, 그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이건 뭐지?” 임다영이 움찔하며 몸을 웅크렸다. 반사적으로 그를 밀쳐내려던 손목에 여기저기 긁힌 상처들까지 드러났다. “이건 또 뭐냐?” 연시윤이 그녀의 손을 붙잡고 내려다봤다. 차 안에서부터 임다영은 머릿속으로 수없이 계산을 굴렸다. 연시윤이 자신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알았다. ‘그런 연시윤이... 임씨 가문이 나를 안중식 그 졸부에게 팔아넘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절대 도와주려 하지 않겠지.’ 오히려 복수 계획이 드러나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었기에, 그녀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걷다가 넘어졌어요.” 어설픈 변명은 오히려 의심을 불렀다. 하지만 연시윤은 그저 입꼬리만 살짝 올리고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그래?” 임다영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연 대표님,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고... 우리 그냥...” 이번에는 연시윤이 그녀를 밀어냈다. “난 그런 취향 아니야.” 그가 돌아서자, 임다영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1층에서 그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내가 올라가서 끌어내리게 만들고 싶지 않으면 스스로 내려와.” 어쩔 수 없이 거실로 내려가 보니, 커다란 의료 상자가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이리 와. 약 발라야 해.” “별거 아닌 상처예요. 제가 알아서...”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연시윤의 미간이 깊게 찡그려졌다. “설마 돈이라도 받은 거야? 이런 걸로 내 평판을 더럽히려는 거냐고?” “...” ‘평판이란 게 있긴 했나?’ 속으로만 그렇게 빈정거리며 그녀는 연시윤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임다영은 가벼운 상처를 입어 손에는 밴드를 감았고 어깨에도 약을 발랐다.그녀는 연시윤에게 은근히 고마움을 느끼며 제대로 보답하기로 마음먹었다. “연 대표님, 뭐 좀 드실래요? 제가 직접 해드릴게요.” 연시윤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임다영을 의심스레 바라봤다. 그러다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임다영은 곧장 부엌으로 달려갔다. 임씨 가문에 입양된 뒤로 줄곧 시키는 대로 온갖 심부름을 해왔기에, 요리쯤은 눈 감고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손맛에도 자신이 있었다. 웬만한 미슐랭 3스타 셰프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녀가 부엌으로 사라지자, 연시윤의 표정이 서늘하게 굳어졌다. ‘저 상처가 단순히 넘어져서 생긴 것일 리 없어.’ 오늘 차를 가로막았던 그놈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곰곰이 떠올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수상쩍은 점투성이였다. 그는 휴대전화를 들어 비서실장 정민에게 짧게 지시를 내렸다. “오늘 임다영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조사해.” 얼마 지나지 않아, 대문 앞에 검은 차 한 대가 멈췄다. 정민과 함께 포박당한 두 명의 사내가 끌려 내려왔다. 바로 안중식의 부하들이었다. 연시윤의 별장 지하에는 그의 이름값에 걸맞은 은밀한 심문실이 있었다. 불과 10분도 안 돼 그들은 모든 걸 불었다. 둘은 원래 유흥업소에서 키워진 해결사였다. 거액의 빚을 진 여자들을 클럽으로 끌고 와 빚을 갚게 만들고 도망치면 잡아들이는 일을 해왔던 것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이번에는 ‘팔려 온 여자 하나를 데려오라’는 고용주의 지시가 있었을 뿐, 그 이상은 모른다고 했다. 연시윤은 무표정하게 듣고 있다가 몸을 돌렸다. 정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표님, 어떻게 처리할까요?” “혀 잘라. 그리고 다리도 부러뜨려.” 그가 지하실 문을 나서자, 묵직하게 닫힌 철문 뒤로 참혹한 비명이 묻혔다. 별장 거실로 돌아왔을 때, 임다영이 마지막 접시를 들고나왔다. “연 대표님, 다 준비됐어요. 이제 식사 시작하시죠. 분명 입에 맞으실 거예요.”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그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연시윤은 미묘하게 거리를 벌렸다. 순진무구한 얼굴로 서 있는 임다영을 보자, 연기력 하나는 기가 막힌다고 느껴졌다. “왜 그러세요?”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자, 연시윤의 입가에 서늘한 웃음이 번졌다. “임다영, 너 진짜 보면 볼수록 역겹다.” 차가운 한마디를 남기고 그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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