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임다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혹시나 안중식이 미친 짓을 벌이며 보육원 아이들과 선생님에게 화풀이할까 두려워 다른 방향으로 몸을 틀어 뛰었다.
하지만 두 다리가 승합차의 네 바퀴를 이길 리 없었다.
곧 그녀 앞을 막아선 낡은 승합차가 끼익 소리를 내며 멈춰 섰고 안중식이 부하 두 명을 데리고 다가와 그녀를 꽉 붙잡았다.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겨우 그 인간 손아귀에서 벗어났는데... 오늘 여기서 끝나는 건가.’
“안 대표님, 이 여자는 어떻게 할까요?”
부하 중 한 명이 물었다.
안중식은 비열하게 웃으며 손을 비볐다.
“일단 묶어서 골목 밖에 세워둬. 난 이년부터 손봐야겠다.”
‘지난번에 놓쳤을 때부터 손끝이 근질거렸는데... 그토록 완강하게 반항하는 여자는 처음이었고 그래서 더 자극적이었지.’
부하 둘은 거칠게 임다영의 손발을 묶고 바닥에 내던졌다.
가녀린 어깨가 벽에 부딪혀 숨이 턱 막혔지만, 그녀는 눈물만 훔치고 이를 악물며 안중식을 노려봤다.
그 눈빛은 오히려 남자의 포악한 욕망을 더 부채질했다.
“임다영, 순순히 내 말 들으면 살려줄 수도 있지. 안 그러면... 알잖아? 내 손에 걸린 계집들이 어떻게 되는지.”
임다영은 몸이 부르르 떨렸지만 입술은 꾹 다물었다.
그때, 손끝에 바닥의 깨진 벽돌 조각과 유리 파편이 스쳤다.
그녀는 겁먹은 척 고개를 숙였다.
“좋아요... 뭐든 다 할게요. 대신... 이것 좀 풀어줄 수 있어요?”
“안 돼.”
안중식은 바로 잘랐다.
“풀어줬다간 또 도망칠 거 아니야.”
“도망은 못 가요. 여긴 막힌 골목이고 밖에는 사람들까지 지키고 있는데... 날개라도 달리지 않는 이상 못 도망치죠.”
그녀는 시간을 끌며 손가락에 힘을 주어 유리 파편으로 밧줄을 긁어냈다.
낡은 밧줄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좋아, 손만 풀어주마.”
안중식이 다가왔다.
임다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네... 어서요.”
그러나 그녀의 손끝에는 이미 벽돌 조각이 들려 있었다.
안중식이 고개를 숙이는 순간, 그녀는 온몸의 힘을 모아 그 벽돌을 남자의 민머리에 내리꽂았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안중식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눈을 부릅뜨고 그대로 쓰러졌다.
골목 안에서의 소란에도 밖의 부하 둘은 태연했다.
“대표님 오래간만에 신나셨네?”
“문주에서 안중식 취향 모르는 사람은 없지. 저 여자도... 참 딱하네.”
임다영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벽을 기어올라 골목 밖으로 몸을 내던졌다.
마침 맞은편 도로에서 한 대의 차량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팔을 흔들었지만, 차는 멈출 기색이 없었다.
‘시간이 없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오기 전에 도망쳐야 해! 차라리 치여 죽더라도! 다시 그 인간들 손에 잡히느니!’
임다영은 이를 악물고 차도 한가운데로 몸을 날렸다.
“끼익!”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듯 울부짖었지만, 거친 관성은 그대로 임다영의 가냘픈 몸을 향해 돌진했다.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마지막 순간, 운전기사가 핸들을 급히 꺾으며 차를 세웠다.
숨이 턱 막히는 긴장이 풀리자,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와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임다영은 곧장 운전석 쪽으로 몸을 기울여 매달렸다.
“아저씨, 제발... 저 좀 태워주세요. 부탁드려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를 악문 채 화를 누르는 듯한 목소리가 무겁게 내려앉았다.“임다영... 또 너야?”
순간, 임다영의 동공이 흔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뒷좌석에 앉은 연시윤이 보였다.
“연 대표님?”
뜻밖의 인물을 보고 놀란 표정이었지만, 연시윤의 눈에는 그 표정이 곧바로 불순한 의도로 비쳤다.
“기가 막히네. 여기까지 쫓아올 줄이야.”
그의 목소리는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임다영은 변명할 틈도 없었다.
“연 대표님, 제발... 저 좀 차에 태워주세요.”
그 처연한 눈빛에 운전기사가 잠시 망설였다.
“대표님, 어떻게..”
“출발해.”
연시윤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는 지금 눈앞에 있는 임다영처럼 가증스럽고 질척거리는 여자를 가장 혐오했다.
몇 번이고 자신의 한계를 건드리는 여자라면, 차라리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임다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돼요, 못 가요!”
임다영은 이를 악물고 차 앞으로 나섰다.
“저를 치어 죽이지 않는 이상, 절대 비켜주지 않을 거예요!”
“정말 내가 못 할 줄 알아?”
연시윤의 눈빛이 짐승처럼 서늘하고 잔혹하게 번뜩였다.
순간, 임다영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문주의 ‘저승사자’라 불리는 그가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걸,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문득 김정숙과 연시윤의 대화가 떠올랐다.
임다영은 숨을 고르며 속전속결로 말했다.
“제가 죽으면... 그쪽 병은 절대 못 고쳐요. 그러면 할머님께 증손자 안겨보는 일, 물 건너가는 거죠.”
“지금... 나를 상대로 협박하는 거야?”
연시윤의 분노가 한층 짙어졌다.
임다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에요. 전... 사실을 말하는 거예요.”
연시윤은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깊게 숨을 들이쉰 뒤, 짧게 내뱉었다.
“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 대표님.”
임다영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앞자리로 가. 네 얼굴 보고 있자니 역겨우니까.”
“하지만 앞자리는 사람들이...”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방에 낯익은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중식과 그의 부하 두 명이었다.
‘이 인간, 벌써 깨어난 거야? 다시 잡히면 끝장일 텐데...’
임다영은 본능적으로 연시윤 쪽으로 몸을 던졌다.
그 순간, 은은한 샴푸 향과 뜨겁게 달아오른 체온이 스쳤다.
연시윤의 몸이 순간 굳어졌고 곧바로 분노가 치밀었다.
“너...”
그때, 머리를 감싼 채 다가온 안중식이 차를 가로막았다.
“모두 내려. 순순히 협조하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아주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