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홍서윤은 여전히 멍한 채로 소씨 가문 저택을 빠져나왔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도 모를 만큼 그녀의 머릿속에 오직 우연의 말만 메아리치듯 맴돌았다. 예전의 우연은 싫고 좋음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소상원이 배신하면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이혼해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그녀였는데 지금 현실 앞에서 그녀의 의지는 점점 빛을 잃고 갈려 나가고 결국 이렇게 변해 버렸다. 홍서윤은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자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그때 그녀가 돌아왔더라면 최태준이 연정 그룹을 그렇게 가혹하게 압박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이 사태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날 밤, 홍서윤은 한숨도 못 잤고 밤을 꼬박 새우며 자료를 뒤적였다. 다음 날 아침, 그녀의 눈 밑에 진한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홍서윤이 사무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임예진이 그녀를 불렀다. 안으로 들어가니 유태민이 앉아 있었는데 홍서윤은 그가 또 무슨 트집을 잡으러 온 건가 싶어 차갑게 노려보았다. 그런데 그다음 순간, 유태민은 마치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굽실거리며 말했다. “홍 팀장님, 지난번 일은 제 잘못이었습니다. 오늘은 직접 사과드리러 왔습니다. 팀장님이 원하시는 게 있으면 뭐든 하겠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 홍서윤은 곧장 안이슬을 불렀다. “이슬 씨한테도 사과해요.” 안이슬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유태민을 보고 움찔하며 본능적으로 홍서윤 뒤로 몸을 숨겼다. 홍서윤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눈빛으로 안심시켰다. 그제야 안이슬은 겁에 질린 얼굴로 앞으로 나왔다. 유태민은 순간 표정이 일그러졌다. 홍서윤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도 치욕인데 한낮 인턴인 안이슬한테까지 사과하라니. 유태민은 그날 안이슬이 입은 옷차림이 어땠는지 기억했다. ‘남자를 꼬시려던 게 뻔한데 지금은 왜 순진한 척이야?’ 그는 속으로 분노가 치밀었지만 겉으로는 삼켜야 했다. 홍서윤은 유태민의 눈빛에서 드러난 경멸을 단번에 보아내고 무표정하게 잘라 말했다. “하기 싫으면 됐습니다.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