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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결혼한 지 5년, 그동안 유선우는 심지유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는 늘 같은 말을 했다. 회사 일이 너무 바쁘다든지, 굳이 혼인신고를 안 해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든지 하면서. 심지유는 그 말을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 그녀는 유선우가 5년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언니와 함께 구청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나오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눈시울이 붉어진 심민주는 유선우의 품으로 달려들었고 손에 혼인관계증명서가 꼭 쥐어져 있었다. “선우야, 그해 결혼식 날에 도망친 건 내가 잘못했어...” 그녀는 흐느끼며 말했다. “이번에도 내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나랑 혼인신고해 준 거 알아. 하지만 그래도 묻고 싶었어.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정말 나를 잊고 지유를 사랑하게 된 거야?” 유선우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유의 손톱이 손바닥의 살을 파고들어 피가 흘러나올 때쯤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했다.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 그러자 심민주는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발꿈치를 들어 올려 유선우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살짝 놀란 유선우는 손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모르다가 천천히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깊은 키스를 이어갔다. 멀리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심지유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유선우가 정말로 그녀의 언니 심민주를 잊지 못했다면 그녀는 도대체 뭐였단 말인가? 빵빵... 귀를 찢는 듯한 경적 소리가 심지유를 정신 차리게 했다. 고개를 돌리자 검은색 마이바흐 세 대가 도로 옆에 멈춰 서 있었다. 거기서 심씨 가문의 세 형제가 차례로 내렸는데 모두 맞춤 슈트를 입고 냉철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 “혼인신고 끝났어? 우리 레스토랑을 예약해 뒀으니까 가서 축하 파티 하자.” 그 말을 들은 심지유는 온몸이 떨렸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녀에게 아침밥을 직접 차려줬던 오빠들이었다. “큰오빠! 둘째 오빠! 셋째 오빠!” 심민주는 울음을 터뜨리며 그들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난 오빠들이 나를 버린 줄 알았어요...” 세 남자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셋째 오빠 심재민이 한숨을 쉬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바보야, 어릴 때부터 네가 사고 칠 때마다 누가 뒤처리했는데?” 심민주는 웃으며 세 오빠의 팔짱을 나란히 꼈다. 그리고 네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차에 올라탔다. 단 한 명, 길 건너편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심지유만 제외하고. 차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녀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겨우 정신을 붙잡고 가로수에 기대자 거친 나무껍질에 팔이 긁혀 피가 났다. 하지만 그 상처는 가슴 속의 통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심민주는 언제나 가족들의 중심이었다. 심지유와 그녀는 쌍둥이인데도 세 오빠의 눈에는 늘 심민주만 있었다. 심지유가 고열로 앓을 때 오빠들은 심민주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갔고, 심지유의 생일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지만 심민주의 생일날에는 집안이 떠나가라 잔치가 열렸다. 게다가 심지유는 열 살 때부터 유선우를 좋아했지만 그는 그녀의 언니 심민주 앞에서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했다. 심지유는 생각했다. ‘역시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나 봐. 이게 내 팔자겠지.’ 그러던 5년 전 결혼식 날, 심민주는 수억 원짜리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결혼식장의 문을 박차고 도망쳤다. 그리고 어떤 깡패 같은 남자와 함께 사라졌다. 심씨 가문과 유씨 가문은 그날 완전히 망신을 당했고 분노한 세 오빠는 그 자리에서 선언했다. “오늘부로 우리에게 동생은 지유뿐입니다.” 그날 밤, 유선우는 술에 취해 심지유의 방으로 찾아왔다. 그는 그녀를 벽 쪽으로 몰아세우고 손끝으로 그녀의 뺨을 천천히 쓸었다. 그리고 술기운에 풀린 눈으로 심지유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랑 민주... 얼굴이 정말 똑같아.” 그 말과 함께 유선우는 원래 심민주에게 끼워줄 예정이었던 결혼반지를 심지유의 손가락에 끼웠다. “민주가 도망쳤으니 너라도 나랑 결혼해 줄래?” 그때 심지유는 알아야 했다. 유선우는 그녀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심민주의 ‘대체품’으로 생각했다는 걸. 하지만 그때의 심지유는 그를 너무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받아들였다. 그 후 5년 동안 유선우는 다른 여자들이 부러워할 만큼 심지유를 아껴주었다. 그녀가 한눈에 반한 파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기 위해 국제 경매장에서 거금을 써버렸고, 노바의 아르디스탑 꼭대기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려 저녁 식사와 함께 불꽃놀이를 구경시켜줬다. 게다가 심지유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릴 때면 유선우는 화상회의를 중단하고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세 오빠도 변했다. 큰오빠 심민혁은 매일 심지유의 회사 앞까지 데리러 왔고 둘째 오빠 심세훈은 그녀가 해산물 알레르기인 걸 잊지 않고 식사 메뉴까지 꼼꼼히 챙겼다. 그리고 셋째 오빠 심재민은 밤새 그녀의 디자인 시안을 같이 검토해 주고는 했었다. “우리 지유의 일이라면 뭐든 도와야지.” 심지유는 이제는 자신도 사랑받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오늘 심민주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사랑이 썰물처럼 심지유에게서 빠져나갔다. 심지유는 멀어져 가는 차들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에는 피식하는 정도였으나 곧 그녀는 점점 크게 웃었다. 그러다가 웃음이 눈물로 번져 심지유는 허리를 굽히며 울부짖듯 했다. 그녀의 눈물이 땅에 뚝뚝 떨어졌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봤지만 아무도 이 예쁜 여자가 왜 그렇게 슬프게 웃는지 몰랐다. 그제야 심지유는 깨달았다. 그녀는 언니가 받아야 할 사랑을 훔친 ‘도둑’이었다. 이제 진짜 주인이 돌아왔으니 대역은 퇴장해야 할 때였다. “그래, 다들 언니만 사랑한다면...” 심지유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는데 심장이 쥐어짜이듯 아파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나도 이제 필요 없어!” 그녀는 손을 들어 지나가던 택시를 세웠다. “국제 프라이빗 아일랜드 거래센터로 가 주세요.” 30분 뒤, 심지유는 두꺼운 유리문을 밀고 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프런트 데스크의 안내원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무인도를 하나 사고 싶어서 왔어요.” 프런트 직원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다가 곧바로 매니저를 불렀다. 곧이어 정장을 차려입은 40대 남자가 다가왔다. 그의 눈빛은 날카롭고 말투는 신중했다. “고객님께서 관심 있으신 그 섬은 조금 남다른 곳입니다. 그곳은 풍경이 아름답지만 통신망이 없고 항로도 없습니다. 보급선도 3개월에 한 번 들르는 게 전부입니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이어서 말했다. “그 섬에 가시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과 다름없는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심지유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섬으로 결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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