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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심지유의 눈시울이 붉어진 걸 본 거래센터의 매니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빠르게 서류를 정리한 뒤 조심스레 말했다. “절차는 최대한 빨리 진행하겠습니다. 섬에 들어가실 날짜가 확정되면 바로 안내해 드릴게요.” 심지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바로 시원스럽게 펜으로 서명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지갑에서 블랙카드를 꺼내 결제했다. 그녀가 집에 돌아왔을 때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따스한 조명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거실 소파 위에 다섯 명의 가족이 모여 앉아 있었다. 유선우가 칼을 들고 사과 껍질을 깎고 있었고 긴 손가락 사이에서 사과껍질이 떨어졌다. 그 곁에 심민주가 앉아 있었고 세 명의 오빠들이 주위에 둘러앉아 있었다. “민주야, 약 좀 먹자. 식기 전에.” 둘째 심세훈이 약그릇을 들고 부드럽게 달랬다. “너무 써서 싫단 말이에요...” 심민주가 코를 찡그리며 투정을 부리자 셋째 심재민이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냈다. “너 어릴 때 제일 좋아하던 거. 나 아직도 갖고 다녀.” 현관에 선 심지유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만큼 주먹을 꽉 쥐었다. “지유야.” 가장 먼저 그녀를 발견한 건 유선우였다. 그는 과도를 내려두고 다가왔다. “오늘 왜 이렇게 늦었어? 어디 다녀왔어?” 유선우의 말투는 여전히 다정했다. 마치 낮에 심민주의 손을 잡고 혼인신고 하러 갔던 사람이 그가 아닌 것처럼. 심지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시선이 유선우를 스치고 곧장 심민주에게로 옮겨갔다. 유선우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려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민주가 말기 암이래. 마지막으로 가족들이랑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귀국했대.” 그는 머뭇거리다가 이어서 말했다. “그때 민주가 도망친 건 잘못했지만 그래도 네 언니잖아. 네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내 체면?” 심지유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네가 아직 언니를 못 잊은 건 아니고?” “지유야...” 유선우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지유야!” 그때 큰오빠 심민혁이 다가와 손을 뻗었고 어릴 때처럼 심지유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멈칫하더니 대신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민주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그래도 우리 가족인데 집에서 지내게 할 수 있잖아.” “맞아.” 둘째 심세훈도 거들었다. “민주가 어릴 때 좀 버릇없었지만 밖에서 고생 많이 하고 자기가 잘못한 것도 깨달았대. 이제라도 가족 옆에 있어야지.” 그리고 막내 심재민이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지유야, 넌 항상 어른스러웠잖아. 이번에도 그렇게 해주라.” 심지유는 세 남자의 말이 한 마디씩 꽂힐 때마다 심장이 조금씩 굳어가는 것 같았다. 결국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러자 네 남자는 모두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우리는 위에 올라가서 방 좀 치울게.” 유선우가 부드럽게 말했다. “지유 너는 민주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네 남자가 계단 위로 사라지자 거실에 적막이 깔렸다. 그때 심민주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의기양양한 눈빛은 감출 수 없었다. “지유야, 5년만이네. 내가 너를 위해 선물을 하나 준비했어.” 그러나 심지유는 그 말에 본능적으로 한발 물러섰다. 어릴 적부터 심민주의 ‘선물’은 언제나 악의로 가득했다. 바늘이 숨겨진 인형, 설사약이 들어간 케이크... 그녀는 그런 것들을 ‘선물’이라고 하면서 심지유에게 줬었다. “걱정하지 마.” 심민주는 순진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그럴 일 없어. 예전처럼 너한테 상처 주고 싶지 않아.” 그러고는 억지로 선물 상자를 심지유의 품에 안겨주고 친절한 척 뚜껑까지 열어줬다. “꺄악!” 그 순간, 시커먼 뱀이 상자 안에서 튀어나왔고 심지유의 손목을 물었다. 날카로운 통증이 순식간에 퍼졌고 심지유는 반사적으로 상자를 던졌다. 그런데 그 상자가 정확히 심민주의 어깨에 부딪쳤다. “아!” 심민주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나자빠졌다. “무슨 일이야?” 남자 넷이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그들은 바닥에 쓰러진 채 눈물을 흘리는 심민주와 피범벅이 된 손목을 감싸 쥐고 있는 심지유를 발견했다. “심지유,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유선우가 가장 먼저 달려와 그녀를 거칠게 밀쳤다. 그러자 심지유는 몸을 휘청거리다가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쳤고 허리가 찢어질 듯 아팠다. “민주가 널 위해 선물까지 준비했는데 넌 왜 이렇게까지 해?” 큰오빠 심민혁이 싸늘하게 말했다. “사... 상자 안에 뱀이 있었어요! 독사가 있었다고요!” “헛소리하지 마!” 셋째 심재민이 소리쳤다. “민주가 지금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어디서 뱀을 구해오겠어?” 심민주는 고개를 숙인 채 흐느꼈다. “선우야, 오빠들... 나는 그냥 지유랑 화해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런데 지유는 나를 미워하나 봐요...” 그 말에 심지유는 숨이 막혔다. “아니에요! 거짓말이에요! 상자 안에 분명...” “그만해!” 유선우가 심지유의 손목을 붙잡았는데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민주는 네 언니야. 게다가 병든 몸으로 힘겹게 돌아왔는데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선우야...” 이때 둘째 심세훈이 심민주를 안아 들며 급히 말했다. “병원부터 가자. 민주가 자극받으면 위험해.” 곧이어 네 남자는 재빨리 심민주를 안고 나갔고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정말 독사가 있었는데...” 심지유는 바닥에 주저앉았고 몸속에 독이 빠르게 퍼지며 시야가 흐릿해졌다. 이때 도우미 이정화가 허겁지겁 뛰어왔다. 심지유는 이정화가 소리치는 걸 들었지만 점점 의식을 잃어갔다. “아가씨! 아가씨!” 이정화는 심지유의 옆에 앉은 채 손을 떨며 그녀의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 “정신 차리세요! 눈을 감으면 안 돼요!” 잠시 후,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들이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의사들이 다른 곳을 불려 갔다. “죄송합니다. 지금 의사 선생님들이 전부 VIP 병동으로 불려 가셨어요.” 간호사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심씨 가문 첫째 따님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서 위에서 오늘은 모든 의사 선생님더러 심민주 씨를 돌보라고 지시하셨어요. 선생님들께서 다른 환자를 진료할 수 없을 것 같으니 다른 병원에 가보세요.” 그러자 이정화가 울먹이며 다급하게 말했다. “안 돼요! 우리 아가씨도 그때까지 못 버텨요! 병원을 옮기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요!” 이때 심지유는 병원 침대에 누운 채 눈을 간신히 떴다. 통증이 그녀의 뼈를 갉아먹듯 몰려오기도 했지만 그보다 가슴이 더 아팠다. 그녀는 옷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더듬어 꺼내고 힘을 쥐어짜며 유선우의 번호를 눌렀다. 연결음이 한참 들리고 나서야 유선우가 전화를 받았다. “선우야...” 심지유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나 뱀한테 물렸어... 의사 한 명만... 보내줘...” “심지유!” 하지만 유선우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네가 밀치는 바람에 민주의 병세가 악화했어! 암 말기 환자한테 무슨 짓이야?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까지 거짓말하고 싶어?” “아니야... 난 정말...” 뚝. 그녀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전화가 끊겼다. 심지유는 휴대폰을 손에 쥔 채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몸을 웅크렸고 의식이 점점 멀어져 갔다. “아가씨! 지유 아가씨!” 이정화가 울부짖으며 그녀를 흔들었다. “눈 좀 떠봐요, 제발! 절대 잠들면 안 돼요!” 하지만 심지유의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졌고 그녀는 너무 아파서 버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심지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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