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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심초연은 허리에서 몰려오는 찌르는 듯한 통증에 잠에서 깼다. 지난 몇 년 동안 더 많은 돈을 벌고 귀국 일정을 앞당기기 위해 심초연은 거의 밤낮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도면을 그려 왔다. 하루 열두 시간 넘게 앉아서 작업하는 건 기본이었고 밤샘은 다반사였다. “젊은 나이에 어떻게 허리 근육 손상에 디스크까지 온 거죠?” 의사는 그녀의 검사지를 들여다보며 연신 혀를 찼다. 기태풍이 걱정할까 봐 심초연은 이 일을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 심초연은 또다시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잠시 생각한 끝에 심초연은 결국 기태풍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쨌든 이 남자는 그녀의 아이 아빠이기도 했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건 달콤한 여자 목소리였다. 심초연은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며 번호를 잘못 누르지 않았는지 다시 살폈다. “누가 내 전화 받으랬어!” 전화기 너머에서 기태풍의 분노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 그런 거였구나.’ 심초연은 심장이 세게 움켜쥐어진 것처럼 아파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심초연?” 기태풍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심초연은 차갑게 말했다. “나 지금 침대에서 못 일어나. 당신이 와서 애를 밥해 주고 어린이집에 좀 보내. 아니면 당신 옆에 있는 미주 씨가 해도 되고.” 기태풍은 다급하게 해명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기태풍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초연은 단호하게 전화를 끊었다. 30분 뒤 기태풍은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에는 눈가가 붉어진 송미주가 서 있었는데 한바탕 운 것처럼 보였다. 송미주는 당당하고도 표정으로 말했다. “초연 씨, 꼭 설명해 드려야 할 게 있는데요. 어젯밤 태풍 씨가 술을 마셨는데 위가 아프다고 하셔서 오늘 아침 해장국을 끓이러 갔던 거예요.” 심초연은 송미주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기태풍에게 물었다. “어젯밤 어디 갔었어?” 기태풍은 생각하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냥 비즈니스호텔에서 하룻밤 지냈어.” 심초연은 송미주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지금 아침 여섯 시에 비즈니스호텔에 가서 해장국을 끓였다는 말인가요?” 두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지자 심초연은 비웃음을 흘렸다. 송미주는 아무도 알아차릴 수 없게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갔다. “저는 아침을 준비할게요.” 기태풍은 어색한 얼굴로 심초연 곁에 앉았다. “허리는 왜 아픈 거야?” 심초연이 되물었다. “이혼 합의서에 서명했어?” “초연아.” 기태풍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직도 내가 돈 못 벌어서 네가 고생하며 빚 갚았던 걸 원망하는 거야? 이번에 20억만 갚으면 앞으로 꼭 잘살게 해 줄게.” 심초연이 막 말을 하려는 순간 문이 삐걱 열리며 틈이 생겼다. 기수천이 이불을 끌어안은 채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또 출장 가는 거야? 엄마 정말 힘들겠다. 나중에 크면 꼭 엄마한테 효도할게.” 작은 몸이 오랜만에 심초연에게 바짝 기대왔다. 심초연은 낮게 대답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초연은 이번에 갈 생각이 없었지만 기수천은 몰래 웃고 있었다. 미주 이모가 가르쳐 준 방법이 정말 효과가 있었다. 기태풍은 신이 나서 돌아서며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이겼으니까 2백억 가져와.” 아침을 먹고 두 사람은 기수천을 유치원에 데려다준 뒤 돌아왔다. 심초연은 진통제와 수면제를 먹고 좀 더 잤다. 밤새 거의 잠을 못 자서였는지 약효가 금세 나타나 그녀는 깊이 잠들었다. 두 사람은 아이를 데려다주고 곧 집으로 돌아왔다. 기태풍은 허리 통증 때문에 엎드려 자는 심초연을 보면서 눈빛에 잠시 연민이 스쳤다. 송미주는 능숙한 손길로 심초연의 허리를 눌렀다. “초연 씨는 오래 책상에 엎드려 일해서 허리 근육 손상이 온 것 같아요.” 기태풍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한텐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어.” 송미주는 손에 힘을 더 주며 말했다. “자책하지 마요. 제가 이렇게 마사지해 주는 걸로 태풍 씨 사과를 대신한 거예요.” 기태풍의 검지가 의미심장하게 송미주의 입술을 스쳤다. “초연이가 네 반만큼만 다정하고 부드러웠어도 좋았을 텐데.” 송미주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초연 씨도 있는데 이러지 마요.” 기태풍의 손길은 더욱 대담해졌다. “괜찮아. 수면제를 먹었어.” 심초연이 눈을 떴을 땐 이미 오후였으며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주변에 감도는 낯선 냄새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저릿한 팔을 털며 침대 가장자리를 짚고 일어나려는 순간 허리에서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극심한 통증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휴대폰을 손에 쥐었을 땐 식은땀이 이미 옷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여보세요? 119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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