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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서영아, 너 진짜 주석현 두고 해외로 나갈 거야?” 카페 안은 조용했다. 한서영은 손에서 스푼을 내려놓고 놀란 표정의 서해원을 바라봤다. 목소리는 담담했다. “나랑 그 사람, 이미 이혼했어.” “이혼...?” 갑작스러운 폭탄 선고에 서해원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이어 억울함이 터져 나왔다. “주석현이 동의했다고? 서영아, 너 3년 동안 얼마나 잘했는데. 그 정도면 돌덩이도 데워졌겠다. 그 사람은 진짜 감정이 하나도 없었던 거야?” 한서영은 미세하게 웃으며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사실 그녀도 그가 정말 동의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보름 전 이혼 서류를 건넸을 때 그는 전화를 받으며 사인만 하고 그녀의 말을 듣지도 않은 채 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 이후 그는 단 한 번도 그 일에 대해 묻지 않았다. 이제 보름만 지나면 서류는 자동으로 효력을 갖고 그녀는 비로소 자유로워질 터였다. 입을 열려던 순간,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끝났어?” 둘은 동시에 돌아봤다. 검은 롱코트를 입은 주석현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서해원은 감정이 남아 있었다. “주석현, 아까 서영이가 너랑...” “여기 어떻게 온 거야?” 한서영은 서해원의 손등을 조용히 눌렀다. 말은 자연스레 끊겼다. “비 올 것 같더라. 오는 길이라 데리러 왔어.” 한서영은 짧게 웃고 가방을 들었다. 둘은 카페를 나섰다. 돌아오는 차 안은 조용했다. 빗물이 창문을 따라 흘러내렸다. 함께 있지만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주석현은 몇 번이나 입을 열려다가 자신이 보름 넘게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말을 삼켰다. 오랜 침묵 뒤 그가 말했다. “서영아. 보름 전에 네가 사인하라고 준 그 서류... 그게 뭐였어?” ‘이제서야 묻다니...’ 하지만 이해는 됐다. 요즘 그의 신경은 모두 소지원에게 가 있었으니까. 대답하려는 순간 전화가 울렸다. “석현아... 나 술 많이 마셨어. 머리 아파. 데리러 와줄래?” 젖은 숨이 섞인 목소리였다. 주석현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소지원. 여러 번 말했지. 나 결혼했어.” 짧은 정적이 흘렀다. “결혼했으면 뭐 어때. 그날 결혼식 신부, 원래 나였잖아.” 그 말 한 줄이 그의 오래 눌려 있던 감정을 긁어냈다. 결혼한 지 3년이 다 되어갔지만 한서영이 본 것은 언제나 차갑고 조용한 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늘, 주석현의 감정이 삽시간에 무너지는 것을 처음 목격했다. 그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자 타이어가 아스팔트에 스치며 날카로운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차가 멈췄다. “그럼 왜 안 왔는데.” 잠시 침묵 끝에 목소리가 떨렸다. “미안해. 다시는 방해하지 않을게.” 전화는 끊겼지만, 그의 표정은 가라앉지 않았다. 한참 핸들을 두드리던 그는 마침내 문자를 보냈다. “주소 보내.” 한서영을 바라보던 그의 눈에는 미안함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먼저 말했다. “일 있으면 가. 난 택시 타고 갈게.” 차문을 열고 우산을 펼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주석현의 가슴 한켠이 무언가에 콕 찔린 것 같았다. 그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오늘 일 끝나면... 돌아올게.” 한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빗속에 서서, 멀어져 가는 그의 차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차오르고 있었다. 오늘은, 그녀가 주석현을 좋아한 지 7년째 되는 날이었다. 한서영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농구장에서 그를 보고 한눈에 반했던 그 순간을. 농구 유니폼을 입은 그는 열 번 던지면 열 번 모두 꽂아 넣었고 혼자서 흐름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사람이었다. 주변에서는 환호와 비명이 터져 나왔고 옆에 서 있던 동기가 막 도착한 친구들에게 말했다. “컴공의 주석현. A대의 간판. 경북 주씨 가문 사람이야.” 아쉽게도 그의 마음속에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소지원 한 사람뿐이었다. 둘은 이미 오래전부터 연인이었다. 주석현은 소지원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의 생일을 위해 놀이공원을 통째로 대관해 깜짝 파티를 준비한 적도 있었다. 소지원이 단지 삐쳐서 주석현을 차단했을 때, 누군가 그에게 고백했다는 이유로 질투를 부린 것뿐이었는데도 주석현은 체면을 내려놓고 교정 한가운데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소지원에게 다시 만나자고 고백했다. 눈이 쏟아지는 날, 소지원이 약속을 어기고 룸메이트와 네일을 받으러 가버려도 주석현은 손이 얼어 감각이 사라질 때까지 그대로 그녀를 기다렸다. 불평도, 원망도 없었다. 대학교 4년 동안, 한서영은 주석현과 소지원의 연애 이야기를 수도 없이 전해 들었다. 그녀는 늘 생각했다. 언젠가 두 사람은 결국 서로의 곁으로 돌아갈 거라고. 그 믿음은 2년 전 더 확고해졌다. 주석현이 졸업하자마자 서둘러 소지원과 결혼식을 준비했을 때였다. 한서영은 청첩장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같은 학과 동기라는 명목으로 그 결혼식에 참석했다. 하지만 식이 시작되고 시간이 흘러도 신부는 나타나지 않았다. 주석현은 전화를 걸고 또 걸었다. 아흔아홉 통. 그리고 돌아온 건 소지원의 메시지 하나였다. “나 아직 결혼하기 싫어. 나 이미 출국했어.” 그날, 주석현의 오랜 인내는 끝이 났다. 주석현은 더는 소지원의 변덕을 받아주지 않았다. 마이크를 집어 들고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 “오늘, 저는 신부를 바꾸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 중 미혼인 여성분, 결혼할 의향 있는 분 계십니까.” 항상 조용하고 존재감이 없었던 한서영의 심장이 그 순간 크게 뛰었다. 주석현을 좋아하던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망설이면 기회가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서영은 일어서 있었다. 그날, 잘 맞지 않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던 남자와 결혼했다. 이후 3년 동안, 두 사람은 예의를 지키는 부부로 지냈다. 크게 다투지 않았고 가까워지지도 않았다.그저 조용히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한 달 전, 소지원이 돌아왔다. 그리고 한서영은 알았다. 주석현이 밀어내려 하면서도 다시 바라보는 시선을. 잡지 않으려 하면서도 놓지 못하는 마음을. 그 순간, 그녀는 이 관계의 끝을 이해했다. 그래서 주씨 가문 사모님 자리를 돌려주기로 했다. 그의 마음을 제자리로 돌려주기 위해, 그리고 자신도 끝내기 위해서였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한서영은 주석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네가 물어본 그 서류, 조수석 서랍에 있어. 궁금하면 열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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