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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일행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수술실 앞에는 주석현이 서 있었다. 옷에 묻은 피는 이미 말라가고 있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번져 있었다. 놀람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빛을 한서영은 처음 보았다. 친구들이 다가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주석현은 머리를 감싸쥔 채 숨을 고르지 못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잘못했어. 지원이한테 그런 말을 해서 화나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 지원이가 화가 나서 혼자 나간 거라서...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운전하게 놔두면 안 됐어. 그래서 사고가 난 거야.” 그가 모든 잘못을 자기 탓으로 돌리자 한서영의 속눈썹이 조용히 떨렸다. 그게 정말 화가 나서 한 말이었다면 그의 진짜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를 붙잡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아마도 그랬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생각은 지금의 한서영에게 너무 잔인했다. 그녀는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 수술실 문이 열렸다. 간호사는 단호한 표정이었다. “환자가 대량 출혈입니다. 혈고에 O형 재고가 부족해요. O형이신 분 있으시면 바로 수혈 부탁드립니다.” 친구들은 서로를 보았다. 모두 AB형이었다. O형은 주석현 하나였다. 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외투를 벗고 무균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시간은 길게 흘렀다. 삼십 분쯤 지나 간호사가 창백해진 주석현을 부축하며 나왔다. 그는 중심을 잃고 한서영 쪽으로 쓰러졌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그를 받았다. 간호사는 다시 말했다. “환자 상태는 좋아지고 있지만 400cc가 더 필요합니다. 같은 혈액형 지인과 연락 가능하신가요?” 모두가 연락을 돌렸지만 없었다. 짙은 적막 속에서 주석현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400cc면 되죠. 제가 할게요.” 간호사는 놀랐다. “이미 600cc 헌혈하셨어요. 계속하시겠다고요?” 친구들이 급히 나서서 말렸다. “석현아 그만해. 비서한테 회사 쪽 알아보라고 할게. 같은 혈액형 사람 금방 찾을 수도 있어.” 그러나 주석현은 고개를 저었다. “지원이는 기다릴 시간이 없어.” 그는 소매를 걷었다. 푸르게 멍든 바늘자국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본 한서영이 조용히 말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게셔. 다른 병원에서 혈액 가져오게 할 수도 있고. 네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주석현은 잠시 멈췄으나 돌아보지 않고 수술실 안으로 걸어갔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친구 하나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소지원만 얽히면 석현이는 정말 아무것도 못 봐. 예전에도 소지원 때문에 싸우다 다리 다쳐서 병원에 석 달 있었다니까. 퇴원하자마자 또 찾아가서 얘기하겠다고 했고.” 다른 친구가 이어 말했다. "그러게. 고등학교 때도 지원이가 갖고 싶어 하던 목걸이 하나 때문에 내기해서 5천 미터 공중에서 뛰어내렸잖아. 중간에 낙하산까지 고장 나는 바람에 정말 죽을 뻔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봐, 또 자기 목숨을 내던지잖아. 난 아직도 석현이 마음에 미련이 남아있는 줄 알고 둘을 다시 붙여 보려고까지 했는데... 정말 내가 바보였어." 그들은 옆에 한서영이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그 말들이 이어지는 동안 한서영은 천천히 모든 것을 납득했다. 이 순간이 되어서야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결혼식 날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마음 한구석에서 꿈틀대던 그 생각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는지를. 뒤늦게 온 사람이 처음부터 있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차가운 마음은 손으로 덮는다고 해서 쉽게 데워지지 않는다. 사랑은 사랑이고, 사랑하지 않음은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애초부터 그녀는 잘못된 곳에 마음을 걸었다. 그러니 지금 이렇게 모든 것을 잃은 상황 앞에서도 그녀는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수술실의 붉은 불빛이 천천히 꺼졌다. 의사가 두 사람을 밀고 나오자 모두가 다가갔다. 의사는 주석현을 내려다보며 낮게 말했다. “둘이 연인이죠?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 요즘 흔하지 않아요.” 한서영은 맨 뒤에 서 있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차가운 조명을 바라보며 아주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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