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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서은수는 어떻게 그 술집을 빠져나왔는지조차 몰랐다. 커다란 빗방울이 몸을 때렸지만 그녀는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룸 안의 대화만이 끝없이 메아리칠 뿐이었다. 강승아...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온몸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려왔다. 이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분명 해외로 나갔음에도 왜 아직도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 것일까. 왜 이토록 그녀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것에 집착하는 것일까. 단지 대학교 때 여신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몰래 찍힌 민낯 사진이 강승아가 공들여 보정했던 대회 사진을 능가해서? 강승아는 일행을 이끌고 화장실로 서은수를 몰아넣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괴롭혔다. 그러고는 그녀의 머리를 변기 안에 처박았다. 서은수가 무릎 꿇고 사과하기를 거부하자 그 후 3년 동안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집단 구타, 바늘로 찌르기, 신발 안에 압정을 넣어놓기, 반 친구들과 공모하여 그녀를 고립시키고 괴롭히기, 아르바이트를 망쳐놓기, 그녀에 대한 음란한 악성 루머를 퍼뜨리기... 강승아는 또 수많은 재벌 2세들을 붙여 서은수에게 대시하게 했다. 한 번은 그녀의 음모를 엿들었는데 돈에 타락하게 만든 뒤 잔인하게 버리려는 계획이었다. 다만 강승아는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3학년 때 유학을 떠날 때까지도 그녀는 서은수를 완전히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때 서은수는 이미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심한 자해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구도운은 바로 그때 나타났다. 그는 다른 부잣집 도련님들처럼 서은수를 상품 보듯 음흉한 눈으로 훑어보며 카드를 던져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맑고 정직했고 서은수의 곤경을 진심으로 이해하려 했으며 그녀의 수요에 항상 귀 기울여주었다. 서은수네 집에 장기적으로 약을 복용해야 하는 할머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그녀를 깔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녀의 생활을 최대한 개선해주었다. 구도운은 또한 그녀에게 인턴십과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해 주었고 일이 끝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면 편의점에 앉아 저녁을 함께 먹었다. 그때마다 서은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은수야, 고생 많았어. 넌 정말 대단해.” 어느 날 할머니가 아프신데 그녀가 타지에 있을 때, 구도운이 할머니를 병원에 모셔다드리고 꼬박 하루를 곁을 지키며 간호했다. 다음 날 그녀가 돌아왔을 때, 구도운은 온몸이 피곤함에 절어 있었지만 웃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할머니 괜찮으셔. 걱정 마. 너야말로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그때 서은수는 다짐했다. ‘바로 이 사람이야. 도운이를 믿어보자. 결과가 어떻든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해.” 그 후로 구도운은 정말 변함없이 그녀에게 잘해주었고 심지어 그녀와 함께하기 위해 집안의 반대도 무릅쓰고 나섰다. 머릿속에서 또다시 구도영의 경멸 어린 조롱이 울려 퍼졌다. “멍청한 년, 우리 구씨 가문에서 어떻게 고아인 서은수를 들일 수 있겠어? 엑스트라 두 명 데려다 연기시킨 게 전부인데. 우리 형이 가족들한테 맞서는 척 연기 좀 했더니 거기에 감동해서 푹 빠져버린 거 있지.” “진짜 멍청하다니까. 3년이나 되도록 이상한 걸 눈치채지 못했어. 이게 말이 돼?” “심지어 아직도 도운 형이 자신에게 푹 빠져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니까.” “멍청한 년, 바보, 머저리...” 서은수는 빗속에 넘어져 눈물이 빗물과 뒤섞여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멍청해, 서은수, 넌 왜 이렇게 멍청한 거니?’ 그녀는 별안간 머리를 들고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폭우가 그녀의 얼굴을 무자비하게 때렸다. 문득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는데 할머니의 간병인이었다. “은수야, 빨리 와. 할머니가 위독해!” 그녀는 머리가 윙 하고 울리더니 백지장이 돼버리고 팔다리에도 힘이 다 풀렸다. 이를 악물고 간신히 바닥에서 일어나 길가로 가서 택시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모든 차들이 미친 듯이 불빛을 번쩍이고 경적을 울리며 지나쳐 갔다. 하는 수 없이 병원으로 뛰어가려던 찰나, 랜드로버 한 대가 멈춰 섰다. 강인한 외모의 남자가 그녀의 목적지를 물었다. 서은수는 안전 따위는 신경 쓸 겨를 없이 빠르게 차에 올라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사는 이미 위독하다는 통보를 내린 상태였다. “호흡 부전으로 응급조치는 이제 의미가 없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서은수는 쿵 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가 힘겹게 웃었다. “은수야... 울지 마... 미안해, 이 할미가 네 결혼식까지 못 버텼네...” 서은수는 힘껏 고개를 저었다. 말을 할 수도, 비통한 흐느낌을 참을 수도 없었다. 할머니는 힘겹게 주위를 쭉 둘러보았다. “도운이는? 도운이 한번 보고 싶은데...” “알았어요.” 서은수의 목소리는 거의 안 들릴 정도로 쉬어 있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구도운에게 끊임없이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계속 끊기자 그녀는 재빨리 메시지를 보냈다. [도운아, 할머니 호흡부전으로 이제 더는 버티기 힘들대. 빨리 병원으로 와줘.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너 보고 싶어 하셔.] [도운아, 할머니 기다리고 계셔. 그냥 얼굴만 보여주면 되는데 와줄 수 없어?] [구도운, 제발...]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겨우 메시지를 작성했다. 충혈된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휴대폰 화면을 적셨다. 지금 이 순간, 거짓과 기만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구도운만 제때 와준다면, 할머니가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따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구도운은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서은수는 전화를 멈추고 있는 힘을 다해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의 손을 잡고 안심시키려 했다. “할머니, 도운이가 일 때문에 전화를 못 받는 것 같아요. 걱정 마세요. 우리 사이 엄청 좋아요. 다음 주면 결혼해요.” “할머니, 저 진짜 행복해질 테니까...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서로 맞잡고 있던 손이 갑자기 꽉 조여졌다. 할머니는 그녀를 뚫어지라 바라보며 말했다. “은수야... 잘... 살아... 행복해야 해...” 곧이어 할머니의 손이 힘없이 늘어졌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향한 할머니의 눈빛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 서은수는 멍한 눈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이내 무너져 내리듯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했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날 밤, 서은수는 멍한 상태로 절차에 따라 할머니의 장례를 치렀다. 구도운은 여전히 아무런 답장도 없었다. 장례를 기다리는 틈틈이 그녀는 차단 목록에서 강승아의 ID를 꺼내 그녀의 피드를 열어보았다. [원래 계획은 일찍 귀국해서 서프라이즈 하려고 했는데 결국 내가 서프라이즈 받았네!] 함께 올라온 사진에서 공항을 배경으로 구도운이 인형 탈을 쓰고 꽃다발을 든 채 땀에 젖은 머리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한없이 다정했다.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그녀는 달콤하게 웃고 있었고 구도운은 고개를 살짝 돌려 애틋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은수는 처참한 미소를 날리며 휴대폰 화면을 껐다. 다음 날 정오, 그녀는 할머니의 유골함을 들고 다시 병원에 돌아와서 두 가지 일을 했다. 첫째, 3일 후로 예정된 낙태 수술 예약을 잡았다. 둘째, 국경 없는 의사회 지원 신청서를 제출했다. 주임교수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곧 결혼하는 거 아니었어?” 서은수는 잠시 침묵했다. “안 해요, 교수님. 저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최대한 빨리요!” 그녀의 충혈된 두 눈과 절박한 모습에 주임교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침 신청 마감 시간이라 며칠간 준비할 시간을 줄게. 일주일 뒤에 병원에 모여서 다 함께 출발할 거야.” “네.” 일주일 후면 바로 구도운과의 결혼식 날이다. 서은수는 그날 이곳을 떠날 뿐만 아니라 그 인간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을 선사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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