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서명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려 하는데 어찌 알았는지 기자들이 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앞다투어 마이크를 들이밀며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임유아 씨, 남편분이 다른 여자에게 피부 이식을 하고 있는데 전혀 섭섭하거나 질투 나지 않으세요? 혹시 돈 때문에 꾹 참고 있는 건가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관계를 유지하실 건가요? 임유아 씨와 친동생 중 누가 진짜 부인이고 누가 제삼자인가요? 아이는 장래에 누구를 엄마라고 부르게 되죠?”
눈이 멀 듯한 플래시 세례 속에서 임유아는 순간적으로 짜증이 치밀었지만 이내 감정을 추슬렀다. 그녀는 여느 때보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이런 질문은 제가 아니라 천우진 씨와 임채아 씨에게 하셔야죠.”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남기자가 경멸적인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임유아 씨 동생분이 아들을 낳아주지 않았다면 유아 씨는 진작 천씨 가문에서 쫓겨났을 겁니다. 카메라 앞에서는 고고한 척 연기하다가 뒤에서 임채아 씨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고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그 말을 들은 임유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두 걸음 앞으로 다가가 우아하게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난 마땅히 제삼자에게 고마워해야 하고 심지어 잘 보이려고 애써야겠네요? 그렇다면 기자님께 물읍시다. 난 아들이 없으면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겁니까? 대체 왜 그런 거죠?”
“아이를 못 낳는다는 이유로 남편의 배신을 감수해야만 하나요?”
임유아는 해명이나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것 따위 필요 없었다. 그녀는 질문을 되돌려서 뭇사람들을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남기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예로부터 여자는 자식을 낳아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하는 법이죠. 유아 씨처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데려가는 남자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해요. 우리가 이렇게 인터뷰해주는 건 유아 씨 얼굴을 알릴 기회를 주는 건데 주제넘게 굴지 말아요.”
그는 점점 더 당당해졌고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나불대면서 임유아에게 모욕감을 주었다.
임유아는 망설임 없이 마이크를 들어 그에게 내던졌다.
남기자가 얼굴을 감싸 쥐고 비명을 지르는 틈을 타 그녀가 지갑에서 천 원 한 장을 꺼냈다.
“여기 치료비예요. 이걸로 강력 접착제 사서 입 다물고 계세요. 종일 쓸데없는 소리나 해대지 말고.”
주변의 놀란 시선을 뒤로하고 그녀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느긋하게 쓸어 넘기며 옆에 있던 여기자에게 라이브 방송을 켜라고 했다.
방송이 시작되자 임유아는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
“제 결혼 생활에 대해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신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들에 대한 질문도 저를 향한 연민과 조롱도 다 알고 있어요.”
“세속적인 관점에서 아들이 있어야 노후를 보장받고 대를 이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저에게 결혼이나 자녀는 전부가 아닙니다. 여태껏 촬영한 작품으로 수많은 상을 받았고 커리어가 곧 제 인생의 막을 내리는 데 첫 포텐을 터트릴 겁니다. 그 외 다른 것은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부디 결혼에 대한 억측은 멈춰주시고 제 성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라 모든 여성의 성취에 주목해주시길 바랍니다.”
라이브 방송 화면에서 창밖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임유아의 얼굴을 비추며 그녀를 찬란하고 자신감 넘치도록 만들어주었다.
수많은 존경의 시선 속에서 그녀는 태연하게 병원을 나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임유아는 천씨 가문 사모님이라는 꼬리표를 완전히 떼어내고 많은 여성들의 숭배 대상이 되었다.
임채아는 수술을 막 끝내고 이번 기회에 천우진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실컷 자랑하려 했다.
하지만 휴대폰을 열어보니 [임유아, 과감한 여성 인권 발언]이라는 내용의 라이브 방송 영상이 도배되어 있었다.
임채아는 질투심에 얼굴이 일그러졌고 방금 이식받은 오른쪽 뺨 피부가 울퉁불퉁하게 변했다.
“나야말로 임신 체질을 타고난 여자인데, 어릴 때부터 임유아는 공부 잘한 것 말고 나보다 나은 게 없잖아! 칭찬받아야 하는 건 나야. 천우진도, 모든 것도 다 내 거야.”
병적인 웃음을 지으며 그녀는 손을 뻗어 침대 옆 탁자 위의 거울을 밀어 넘어뜨렸다.
거울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녀는 손바닥의 날카로운 통증을 참으며 가장 날카로운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뺨을 그었다.
선명한 핏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자 그녀는 즉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휘청거리는 발걸음으로 천우진의 병실에 달려갔다.
“우진 오빠...”
임채아가 애처롭게 병상 옆으로 쓰러지더니 일부러 뺨의 상처를 드러냈다.
천우진의 반반한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다급하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피를 왜 이렇게 많이 흘려?”
임채아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인 채 말할 듯 말 듯 망설였다.
천우진이 거듭 추궁하자 그제야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언니가... 질투해서 그랬어. 오빠가 내게 피부를 이식해줬다고 일부러 내 얼굴을 그었어...”
“심지어 라방에서 날 제삼자로 몰아가서 악플이 미친 듯이 달려. 나 어떡해 오빠? 나 이제 어떡하지? 너무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