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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한 여자면 충분해

접수증을 손에 쥐고도 문지원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해외로 팔려 가 장기를 적출당하는 악몽보다도 더 끔찍했다. 잠시 후, 머리 위로 손이 불쑥 나타나더니 접수증을 낚아챘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내가 갖고 있을게.” 여진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종이를 꼬깃꼬깃 접어 양복 안주머니에 쏙 집어넣었다. 문지원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고, 그가 차에 오르기 직전 앞을 가로막았다. “아저씨, 우리 얘기 좀 해요.” “도움이 필요할 때만 아저씨라고 부르네?” 말을 마치고 긴 다리를 움직여 조수석 문을 열었다. “회사에 미팅하러 가야 하니까 일단 타.” 문지원은 순순히 올라탔다. 시동이 걸리고 나서 여진우의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세월이 흘러도 바쁜 건 여전한 듯싶다. “오늘은 안 돼. 나중에 다시 얘기해.” 마지막 통화를 마치고 전원을 끄더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할 말이 뭔데?” “이 결혼을 언제까지 지속할지 합의 봐야 하지 않겠어요?” 핸들을 잡고 있던 여진우의 손이 움찔했고, 곧이어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둔 기간이 있어?” 문지원은 협상의 여지가 엿보이자 재빨리 떠보았다. “1년...?” 하지만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결국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럼 3년은 어때요? 아저씨처럼 잘 나가고 배경이 어마어마한 사람이라면 여자가 줄을 섰을 텐데, 그냥 제가 도망쳤다는 사실이 자존심 상해서 일부러 곁에 붙잡아두려는 거잖아요.” “계속해.” “그러니까 이렇게 하시죠? 앞으로 3년 동안은 도망갈 생각 일절 안 하고 여원 그룹을 위해 열심히 일할게요. 대신, 3년이 지나면 절 이만 놓아줘요.”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여진우 몰래 자취를 감추는 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꼴이었다.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한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방법은 차고 넘쳤다. 쓸데없는 수 싸움을 벌이느니 차라리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게 나았다. “싫은데.” 역시나 거절당했다. “아저씨는 뭘 원하는데요?” “소정아, 난 한 여자면 충분해.” 그는 결벽증이 있다. “3년이면 꽤 긴 시간이잖아요. 어쩌면 그동안 더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날지도 모를 텐데.” 문지원은 외모가 나쁘지 않지만 결코 여신급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직장에서 치열하게 버텨온 지난날, 상류층 남자들이 얼마나 자주 여자를 바꾸는지 익히 봐왔다. 그런 사람들과 비교하면 여진우의 능력으로 문어발식 만남도 충분히 이해가 갔기에 곧 그녀에게도 싫증이 날 거라 확신했다. “일리는 있는 것 같군.” 여진우는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대충 맞장구를 쳐주었다. “약속하는 거죠? 기한은 3년이에요. 만약 그 전에 마음에 드는 여자가 생기면 바로 얘기해주세요. 언제든 계약을 종료해도 되니까.” 말을 마치자 여진우의 새까만 눈동자가 옆에 앉은 여자를 향했다. 어제 우연히 다시 마주치고 오늘 혼인신고까지, 문지원의 얼굴에 처음으로 진심 어린 미소가 떠올랐다. 3년이라는 기한을 정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기뻐할 일인가? 여진우는 코웃음을 짓더니 창문을 내렸다. 이내 계기판 위에 놓인 담배를 집어 들고 불을 붙였다. “이따 비서가 회사 안내해 줄 거야.” “네.” 문지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려던 찰나, 순식간에 굳어지는 여진우의 표정을 발견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 밖을 내다보니 여원 그룹 정문 앞에 심무영의 차가 멈춰 있었다. 심무영 역시 그들을 본 듯 성큼성큼 다가왔다. “여 대표님,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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