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널 협박한 거지?
평소에 늘 온화하고 다정하던 심무영이 화내는 모습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다크써클이 턱까지 내려와 있었다.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아마 밤새 찾아다니느라 한숨도 못 잔 듯했다.
하지만, 상대는 무려 여진우이지 않은가?
죽고 싶어 환장했나?
곁눈질로 문을 열고 내리려는 여진우를 발견한 순간 문지원이 재빨리 그의 팔을 움켜잡았다.
“아저씨, 잠깐만요! 제가 가서 얘기할게요.”
현재의 심무영은 이성을 잃은 나머지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른 상태였다. 조금만 지나 마음을 가라앉히면 자신이 얼마나 무모한 짓을 했는지 분명 깨닫게 될 것이다.
여진우는 여원 그룹을 세워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동남아 최대의 도박 성지를 손에 쥐고 있던 남자였다.
그 안에서 벌어졌던 온갖 더러운 거래들은 뻔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또한, 재계에 발을 들이자마자 모든 이들에게 존중과 예우를 받으며 여원 그룹을 정점에 올려놓을 수 있었던 이유도 감히 그와 경쟁하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돈을 잃는 선에서 끝났지만 여진우와의 싸움은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여진우는 하얗고 부드러운 손등을 내려다보았고, 고민하는 듯 묵묵부답했다.
문지원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말했다.
“무영 씨한테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차 안은 침묵이 이어졌다. 잠시 후, 그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여기서 지켜볼게.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마.”
“네.”
허락받고 나서야 문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차 문을 열고 내리려던 순간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킨십은 안 돼.”
그렇지 않으면, 결과는 본인이 감당해야 할 테니까.
...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큰 변화가 생길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다시 심무영과 마주 섰을 때 그녀는 이미 여진우와 혼인신고를 마친 상태였다.
문지원을 보자마자 심무영은 자연스럽게 한 발 앞으로 다가가 손을 잡으려 했다.
“지원아...”
그러나 문지원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서더니 경계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오지 마! 거기 서서 얘기해.”
“뭐라고?”
심무영의 눈빛에 혼란과 당혹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왜 그래? 혹시 괴롭힘이라도 당한 거야?”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문지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회사로 돌아가. 소리 엔터테인먼트 기획서는 정리해서 메일로 보낼게.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 실사 관련해서는 신경 좀 더 쓰고.”
이 말은 사실상 업무 인수인계를 하겠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여진우의 비서가 아침 일찍 세명 그룹에 찾아가 정리를 마친 상황이라 심무영도 속으로 훤했다.
단지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럼 넌 어떡해?”
문지원은 무의식적으로 여진우의 차를 힐끗 바라본 뒤 이를 악물고 말했다.
“여원 그룹에서 일하기로 했어.”
“저 사람이 널 협박한 거지?”
심무영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내가 진작 눈치챘어야 했는데. 어제 널 보는 눈빛이 이상하다고 했어. 우리 곧 결혼할 사이 아니야? 내 청혼까지 받아줬잖아! 혹시 여진우한테 약점이라도 잡힌 거야? 걱정하지 말고 나한테 와. 널 지켜줄게. 설령 권세가 하늘을 찌를지언정 내 약혼자를 강제로 빼앗아 갈 순 없지.”
문지원은 말을 아꼈다. 여진우가 차 안에서 지켜보고 있기에 일단 심무영을 무사히 돌려보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입을 떼기도 전에 차 안의 남자가 어느새 창문을 내렸다.
그는 눈썹을 까딱하더니 능글맞은 말투로 비아냥거렸다.
“당신 약혼녀라...”
“맞아요!”
심무영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등을 꼿꼿이 세웠다.
“여 대표님, 우리 둘 다 같은 업계 사람 아닙니까? 최소한 순서는 지켜야죠.”
그에게 순서를 따지다니?
여진우는 목젖이 보일 정도로 박장대소했다.
“소정아, 나랑 처음 만났을 때가 언제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