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배유현은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이 뜻대로 흘러가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천자의 아들’이라 불렀다. 연애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가 상처받았던 순간은 단 한 번.
한 여자가 협박을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때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두 번째로 그 기분을 맛보고 있었다.
입으로는 ‘그녀가 다른 남자와 이래라저래라 한다’고 했지만 정작 손을 놓지 못한 건 자신이었다.
윤채원의 말이 옳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동시에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배유현은 침묵 속에서 윤채원의 손목을 더 강하게 움켜쥐고 걸음을 재촉했다.
아이를 안은 팔은 안정적이었고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윤아린이 그를 올려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그러나 눈빛엔 두려움 대신 신뢰가 있었다.
윤채원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을 지나던 이웃들이 힐끔거리며 두 사람을 훑어봤다.
불만을 품은 여자와 냉정한 남자가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은 처음 보는 이에게 싸우는 연인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아파트 사람들은 모두 윤채원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본 뒤, 다시 배유현을 훑으며 수군거렸다.
건물 입구에 다다르자 마침 1층 문이 열리며 할머니 두 명이 나왔다.
윤채원과 눈이 마주치자 두 사람 모두 잠시 굳었다.
그 순간, 배유현은 손을 놓았다.
놓고 싶지 않았지만 이곳이 윤채원의 생활 터전임을 알기에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그녀는 결혼한 여자였고 시어머니와도 함께 살고 있었다.
그의 내적 갈등은 담담한 얼굴 속에 감춰졌다.
윤아린을 안은 채, 그는 묵묵히 계단을 올랐다.
뒤에 남은 할머니들이 속삭였다.
“저거, 진정숙 위에 사는 여자 아니야?”
“그런데 저 남자는 누구야? 돈 있어 보이는데.”
“윤채원, 능력 있지. 그런데 그 집 사정이 원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위에 있던 배유현이 돌아섰다. 얼굴은 얼음장 같았고 눈빛은 날카로웠다.
할머니들은 기겁하듯 서로 눈을 마주쳤다.
윤채원은 급히 허리를 숙였다.
“죄송해요, 강 아주머니, 송 아주머니.”
그녀는 배유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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