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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선명 그룹이 기자 회견을 진행했다는 말이었고 그다음으로 윤성빈이 성공적으로 성신 기업을 인수했다는 말이 보였다. 이제껏 채씨 가문을 지탱해왔던 성신 그룹이 오늘로써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기사를 아래로 내려보니 윤성빈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찍힌 것이 보였다. [젊은데 잘생기기까지, 세상 다 가졌네.] [딱 한 번만 사귀어보고 싶다! 윤성빈!] [아쉽지만 그건 안 될걸요? 윤성빈은 유부남이잖아요. 결혼 상대는 채씨 가문의 딸이고요.] [맞아요. 정략결혼이었어요. 다들 3년 전 기사 잊은 건 아니죠? 왜, 결혼식 때 윤성빈이 신부를 두고 먼저...] [...] 채시아는 결혼식 날 윤성빈이 자신을 내팽개치고 잔뜩 분노한 얼굴로 떠난 일을 거의 잊어버릴 뻔했다가 댓글 때문에 다시 떠올려 버렸다. 댓글을 더 내려보니 더 이상 윤성빈에 관한 얘기는 없었고 온통 성신 기업과 채씨 가문 얘기만 가득했다. 채시아는 이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성신 기업이 언젠가는 무너질 거라는 것을. 다만 이렇게 빨리 무너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 한편, 윤성빈은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긴 성신 기업을 인수하고 복수에 성공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신도영은 박수를 치며 쾌재까지 불렀다. “내가 다 속이 시원하네. 진작 이렇게 됐어야 했어!” 그는 시원하게 물을 한잔 마시고는 다시금 윤성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채시아는 뭐래? 제발 한 번만 살라 달라고 빌어?” 윤성빈은 그 말에 사인하려던 손을 멈칫했다. 기분 탓일지 모르지만 최근 들어 채시아의 얘기를 꺼내는 주변인들이 많아졌다. 이혼까지 했는데도 채시아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화가 나서일까, 윤성빈은 냉랭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 “그래?” 신도영은 조금 놀란 듯 보였다. ‘회사가 완전히 넘어갔는데도 그 귀머거리가 아무런 반응도 안 보였다고?’ “설마 정말 생각을 달리 한 건가? 듣기로 채선우랑 채시아 엄마가 그렇게도 채시아를 찾고 있다고 하던데.” 신도영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자 윤성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책상을 쾅 내려쳤다. “나가.” 신도영은 윤성빈의 눈치를 보더니 이내 조용히 입을 닫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문이 닫힌 후, 윤성빈은 저도 모르게 휴대폰을 집어 메시지와 부재중을 확인했다. 하지만 채시아로부터는 한 통의 메시지도 전화도 없었다. 쫓겨난 신도영은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윤성빈의 태도는 확실히 이상했다. 멀쩡한 얼굴로 업무를 처리하다가도 채시아 얘기만 꺼내면 아까처럼 바로 화부터 냈으니까 말이다. 신도영은 건물 밖으로 나온 후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채시아는?” “찾았습니다. 하서에 있는 작은 모텔에 숙박하고 있었습니다.” 신도영은 비서로부터 정확한 위치를 전해 받은 후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이혼에 동의했다고 해도 윤성빈을 3년이나 괴롭혔던 여잔데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오늘도 역시 비가 내렸다. 채시아는 봉사 활동을 마치고 병원에서 약을 받은 다음 모텔로 걸어갔다. 신도영은 차를 몬 채로 모텔 주위를 배회하다 우연히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채시아를 발견했다. 그는 비릿하게 웃더니 일부러 속도를 올려 옆을 지나갔고 그 탓에 채시아는 물보라를 맞고 몸이 쫄딱 젖어버렸다. 채시아는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가 자신에게 물보라는 안겨준 차량을 확인하고는 흠칫했다. 짙은 회색의 부가티, 이건 신도영의 차량이었다. 채시아는 차량이 바로 앞에 멈추는 것을 보았지만 못 본 척 시선을 거두어들이고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신도영은 자신을 무시한 채 지나가는 그녀의 행동에 피식 웃더니 이내 속도를 늦춘 채로 앞으로 나아가며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지금 이게 무슨 태도지? 이제는 인사도 안 하네? 전에는 내 마음에 들어보려고 그렇게도 아양을 떨어대더니.” 채시아는 모욕적인 그의 말에도 계속해서 무시했다. 예전의 그녀는 신도영을 포함한 윤성빈의 주변인들에게 전부 다 잘 보이려고 애를 썼다. 처음에는 싫어하는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었기에 그녀는 윤성빈과 사이가 좋은 신도영에게 특히 더 잘해주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윤성빈의 가족들도 그의 친구들도 언젠가는 자신을 받아주겠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큰 오산이었다. 2년 전 파티날, 신도영은 아예 선전포고하듯 그녀에게 자신은 임수아의 친구라고 얘기하며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대놓고 그녀를 모욕하고 비난했다. 심지어 악마처럼 웃으며 수영장에 그녀를 세게 밀어버리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채시아는 본능적인 거부감과 두려움에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 신도영은 채시아가 끝까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차에서 내리더니 성큼성큼 다가가 단숨에 그녀의 팔을 덥석 잡아버렸다. “이번에는 대체 무슨 수작을 피우려고 이러지?” 채시아는 아픔을 참으며 그에게 물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러고는 잡히지 않은 손을 이용해 그의 손을 풀려는데 신도영이 갑자기 그녀를 잡고 있던 팔을 멀리 뿌리쳐버렸다. “더러운 손으로 어딜 만져!” 채시아는 휘청거리다 그만 털썩하고 바닥에 넘어지고야 말았다. “하?” 신도영은 고작 뿌리침 한 번으로 힘없이 넘어진 그녀를 보고는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쳤다. “거기 무슨 일이에요?” 그때 두 사람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가씨 다친 거 아니야?” 신도영은 혀를 한번 차더니 그녀에게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야, 수아 건드리지 마. 수아는 더러운 수나 쓰는 너랑 달리 순수하고 착한 애야. 수아야말로 성빈이한테 어울리는 여자라고. 그러니까 괜한 수작 부릴 생각하지 말고 이번 기회에 확실히 성빈이 놓아줘. 그게 네 신상에도 이로울 거야.” 신도영은 자리를 벗어난 후 채씨 가문 사람들에게 친절히 채시아가 있는 곳을 얘기해주었다. 채시아는 바닥에 넘어진 바람에 손과 무릎이 다 까져 좀처럼 일어서지를 못했다. 그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도영이 왜 이렇게도 자신에게 적대적인지. 4년 전에 채시아가 위험을 무릅쓰고 곧 폭발하기 직전인 차량에서 신도영을 구해줬을 때 신도영은 피범벅이 된 얼굴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도 다정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고마워요. 이 은혜는 반드시 갚을게요.” 이게 바로 신도영이 은혜를 갚는 방식인 건가? 대단히 큰 보답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은혜를 원수로 갚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아가씨, 아까 그 남자 누구야? 남자친구? 경찰에 신고해줘?” “아무래도 신고하는 게 낫겠어요.” “어머, 무릎이랑 손이 다 까졌네!” 채시아는 귀가 윙윙거려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걱정하고 있다는 건 대충 느꼈기에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서며 고개를 숙였다. “저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사람들은 절뚝이며 앞으로 걸어가는 그녀를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정말 경찰을 안 불러도 되려나...?” 아마 채시아는 그들의 말을 다 들었어도 경찰 부르는 건 거절했을 것이다. 신씨 가문은 윤씨 가문 정도는 아니지만 꽤 큰 규모의 의료 산업을 거느리고 있는 나름 유명한 가문이었으니까. 만약 신도영이 윤성빈의 꽁무니를 쫓는 짓을 그만두고 열심히 자신을 갈고닦았으면 아마 진작에 가문의 모든 것을 다 손에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도영은 게으른 편이었고 의학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들 만만하게 볼 인물은 절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의 채시아는 그를 적으로 둘 능력이 없었다. 모텔로 돌아간 후 채시아는 먼저 샤워부터 했다. 그러고는 다친 곳에 약을 바르고 침대에 누우니 벌써 11시가 다 되어 있었다. 오늘 신도영과 만난 것으로 그녀는 윤성빈을 떠날 결심이 더 확고해졌다. 다음 날 아침. 채시아는 비몽사몽 한 채로 침대에서 일어났다가 소파에 앉아있는 최익순을 보고는 흠칫 놀라며 자리에 멈춰 섰다. “일어났니?” 최익순은 혈색 하나 없이 창백한 딸의 얼굴을 보고도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엄마...” 채시아는 잔뜩 잠긴 목소리를 내며 앞으로 두어 걸음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본 최익순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더니 그대로 있는 힘껏 채시아의 오른쪽 뺨을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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