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4화

“여기로 굴러떨어져 봐.” 냉정한 목소리로 서강준이 말했다. “그럼 지난 일은 모두 없던 걸로 해줄게.” 난간을 꽉 붙잡고 임지안이 소리쳤다. “서강준, 그 여자는 언니가 아니잖아! 너 제정신이야?” “지현이를 닮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해.” 그의 눈빛이 음울하게 일그러졌다. “직접 죗값을 치를 생각이 없어 보이네. 와서 밀어버려.” 경호원이 다가와 망설임 없이 임지안을 밀었다. “아!” 임지안의 몸이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온몸이 난간과 계단 모서리에 부딪혔고 바닥에 깔린 유리 조각들이 살을 파고들었다. 붉은 피가 계단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시야가 까매졌다. 겨우 손끝으로 바닥을 짚은 순간 누군가가 다시 그녀를 거칠게 끌어올렸다. 그리고 또 한 번 강하게 밀었다. 두 번, 세 번... 임지안의 몸이 망가져 더는 일어나지 못할 때까지 계속 반복됐고 그녀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와 옷깃을 붉게 물들였다. 의식을 되찾았을 때 희미하게 복도에서 간호사들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한미주 씨 얼굴 상처는 벌써 다 나았대. 그런데도 서 대표님이 매일 병실에 들러서 챙긴다더라. 진짜 불면 날아갈세라 보살피신다니까.” “그에 비하면 302호의 그분은 정말 불쌍해. 온몸이 상처투성이인데 밥 가져다주는 사람 하나 없잖아...” “듣자 하니 그분이 진짜 아내라던데?” “쉿, 조용히 해...” 임지안은 눈을 감았고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며칠을 더 병원에 누워 있었지만 몸 상태는 점점 악화됐다. 진통제도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위암이 주는 고통은 숨 쉬는 것조차 괴롭게 만들었다. 결국 임지안은 스스로 퇴원 절차를 밟았다. 어차피 남은 시간도 얼마 없으니 병원에서 썩을 이유도 없었다. 집에 돌아오니 거실에는 서강준이 앉아 있었다. 그녀가 들어오는 걸 보고도 그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리며 서재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서강준.” 임지안은 벽을 짚으며 힘겹게 서강준을 불러 세웠다. “모레가 내 생일이야.” “그래서?” 그가 무심히 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너랑 같이 보내고 싶어.” “마지막이라니? 설마 환생이라도 서둘러 하려는 거야?” 임지안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 빨리 환생해 보려고. 생일 같이 보낼 거야 말 거야?” 서강준은 그녀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며 코웃음을 쳤다. “그래. 내가 아주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 줄게.” 그는 ‘특별한’이라는 단어에 유난히 힘을 주었고 눈빛에는 악의가 번졌다. 생일날. 임지안은 서강준이 보낸 주소를 따라 호텔로 향했다. 문을 열자 순간 발걸음이 멈췄다. 홀 전체가 영안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정중앙에는 커다란 관이 놓여 있고 사방에 하얀 꽃이 가득했다. 벽에는 임지안의 영정사진이 걸려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손님들은 팔에 흰 리본을 달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서자 모두가 동시에 시선을 돌려 조용히 지켜봤다. 그들의 얼굴에는 동정이 아닌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마음에 들어?” 사람들 사이에서 서강준이 걸어 나왔다. 입가에는 조소가 넘쳐 흘렸다. “임지안, 너를 위해 준비한 장례식이야.” 임지안은 잠시 영정사진을 바라보다가 이내 웃어 보였다. “마음에 들어.” 서강준은 잠깐 멈칫했지만 곧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저기에 서 있어.” 그의 손짓에 주변에 있던 몇몇 남자들이 향을 들고 다가왔다. “형수님, 일찍 죽어야 일찍 환생하죠.” “다음 생에는 강준 형 건드리지 말고요.” “편히 가세요.” 임지안은 미소를 띠며 하나하나 받아주었다. 그렇게 인사가 끝나자 그녀는 조용히 돌아서려 했다. 그러나 서강준이 그녀의 팔을 거칠게 붙잡았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뭐가?” “왜 화를 안 내?” 서강준의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 “이런 모욕, 네가 제일 싫어하는 거잖아.” 임지안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차분히 말했다. “이건 모욕이 아니야. 네가 내게 준 선물이잖아. 정말 마음에 들어.” 어차피 그녀는 정말로 곧 죽을 몸이었으니까 아무렇지도 않았다.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