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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진한나의 말에 하연우는 눈에 띄게 굳어진 표정을 지었고 허리를 감싸 안은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 진한나는 미꾸라지처럼 하연우의 품에서 쏙 빠져나가 빠르게 집 안으로 들어간 뒤 문을 쾅 닫아버렸다. “하긴 뭘 해요!” 씩씩대는 진한나의 목소리와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하연우는 멍하니 우뚝 서서 피식 웃어버렸다. 마치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듯 말이다. ... 이날 밤 진한나는 드물게 깊이 잠들었다. 앞으로 보름 동안 처리해야 할 일을 전부 깔끔하게 처리해야 했다. 일과 자신을 키워준 부모 문제까지. 아침 일찍 일어난 진한나는 간단히 씻은 후 우유 한 잔을 마셨고 곧장 차고로 내려가 진현성이 준비해 둔 세 대의 고급 차량 중에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거로 골라 대명 그룹으로 향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진한나는 이미 세 건의 소프트웨어 개발 특허를 보유했고 최정상급 연구팀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계약하면 최소 2년간 해외 지사에서 기밀 프로젝트를 연구해야 했던지라 외출조차 불가능했고 고건우는 그녀가 없이는 단 한 순간도 못 산다며 절대 가지 말라고 했었다. 결국 영입 제안을 거절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고건우는 여자가 자신보다 유명해지는 게 싫다고 했기에 진한나는 자신의 모든 성과를 숨겼다. 그 후 고건우는 진한나를 대명 그룹 홍보팀에 일개 그래픽 모델로 취직시켜 주었다. 알려지지 않은 그 특허들을 제외하면 대명 그룹에서 진한나는 배경도 인맥도 없는 낙하산이었다. 고건우는 그런 관계를 즐겼고 진한나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들에게 해명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사랑하면 자신도 고건우의 진심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8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하게 되었다.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단아하고 청순한 여자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직원들에게 소개하는 고건우의 모습이 보였다. “여러분, 여기는 제 약혼녀 소가연입니다. 오늘 여러분께 인사드리러 왔어요.” 말은 그럴싸했지만 진한나는 고건우의 눈 밑에 생긴 멍과 손목에 어렴풋하게 보이는 붉은 자국을 발견했다. ‘어젯밤, 꽤 힘들었나 보네?' 시끌벅적하던 웃음소리는 진한나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끊기며 분위기가 묘하게 변했다. 직장동료들은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눈빛으로 진한나를 보았다. 여하간에 진한나는 얼굴도 예뻤을 뿐 아니라 몸매까지 완벽했으니까. 게다가 고건우와의 관계 때문에 뒤에서는 다들 진한나를 여우라고 욕했다. 이젠 고건우가 약혼녀를 데리고 나타났으니 모두 그녀가 망신당하기만을 기다렸다. 진한나는 요염한 자태로 앞으로 걸어갔다. “고 대표님, 안녕하세요. 이분이 미래의 사모님이신가요? 정말 스타일이 청순하시네요!” 고건우는 진한나를 본 순간 표정이 굳어졌고 아무 말도 없이 소가연의 손을 잡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마자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비아냥댔다. “아무리 여우라고 해도 결국은 그 노력이 헛수고가 되었네요. 설마 아직도 사모님 자리를 노리는 건 아니겠죠? 어머, 불쌍해서 어쩌나.” 주변에서는 비웃는 소리가 들려도 진한나는 우아하게 가방을 의자에 내려놓았다. 원래도 예쁜 얼굴에 화장까지 하니 더 예뻤고 몸매를 완벽한 살린 원피스를 입고 있어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먹지도, 손대지도 못하는 감이라 질투가 나는가 봐요. 어차피 저보다 얼굴도 예쁘지 않고, 몸매도 안 되면서 뭘 그렇게 질투하는지 모르겠네요. 옷을 전부 벗어도 침대에 올라가지도 못할 텐데 말이에요. 그래도 전 몇 년이나 공짜로 가지고 놀다가 질려서 버린 건데 아는지 모르겠네요.” 그 말에 사람들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진한나는 몸을 돌려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복도 끝에서 커피잔을 든 고건우가 잔뜩 굳어진 얼굴로 서서 자신을 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 그녀가 한 말을 전부 들은 것이 분명했기에 진한나는 일부러 입꼬리를 올리며 도발했지만 가슴이 아픈 건 여전했다. 8년 동안 고건우를 위해 매일 아침 커피를 타주었건마는 고건우는 단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이나 수고했다는 말을 한 적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직접 소매를 걷어 올리고 다른 여자를 위해 커피를 타주고 있지 않은가. 너무도 아이러니했다. 원래는 바로 사직서를 낼 생각이었지만 고건우가 대놓고 다른 여자를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보니 조용히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사직서를 내더라도 그들을 제대로 한 방 먹이고 나서 그만둘 생각이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각 부서의 단톡방에서는 미래의 사모님을 맞이하는 환영식이 저녁 8시에 샹그릴 호텔에서 진행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반드시 꾸며서 참석하라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맞은 편에 앉은 동료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진한나에게 말을 걸었다. “한나 씨, 불편하면 저희가 대신 말씀드려줄게요. 대표님도 한나 씨가 참석 안 해도 이해하실 거예요.” 그러자 주변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운 오리 새끼가 동화 속에서나 백조가 될 수 있었던 거지, 그게 현실에서 정말 될 거라고 생각하나? 나 같았으면 창피해서 안 갔을 거예요. 방금도 보세요. 대표님이 눈길조차 주지 않았잖아요.” 진한나는 가방에서 거울을 꺼내 립스틱으로 입술을 세 번 덧발랐다. 그러자 더 요염한 분위기가 흘렀다. “가야죠. 왜 안 가겠어요. 대표님이 저한테 눈길을 주든 말든 제 알 바도 아니고, 꼴 보기 싫으면 알아서 피하라고 하세요.” 진한나의 말에 사람들은 바로 진한나가 허세를 부린다며 수군댔다. 여하간에 그 몇 년 동안 진한나는 고건우에게 얼마나 매달렸는지 그들도 전부 똑똑히 봐왔으니까. 이제는 약혼녀가 나타났으니 진한나가 소란이라도 피우는 순간 바로 회사에서 쫓겨날 것이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가 직장도 잃고 스폰서에게도 버림을 받으면 어떻게 될지는 뻔했다. 저녁 8시. 파티가 화려하게 시작되었다. 한껏 꾸며서 참석하라고 요구하긴 했지만 아무도 미래 사모님의 기를 꺾을 만큼 화려하게 차려입지는 않았다. 다들 무난하게 차려입고는 소가연의 주위로 몰려들어 아부하기 시작했다. 홍보팀 직원 몇 명이 한곳에 모여 문 쪽을 힐끔거렸다. “한나 씨는 역시 여기 올 배짱은 없었나 보네요.” “그 여우도 어차피 오래 못 버틸 거예요. 사모님이 여우가 한 짓을 알게 된 순간 바로 쫓아낼 테니까요.” 그들이 신나게 떠드는 사이 문 쪽에서 갑자기 술렁임이 일었다. 진한나는 붉은색 맞춤 드레스를 입고 눈부시게 등장했다. 귀나 목에서는 한눈에 봐도 비싼 다이아몬드가 조명 아래서 반짝이고 있었고 아름다운 얼굴을 더 돋보이게 했다. 백옥 같은 피부는 선명한 붉은색과 완벽하게 어우러졌고 마치 거침없이 피어난 한 떨기의 장미처럼 어떤 추위와 비바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은 진한나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리와 함께 부드럽게 흔들렸다. 몇몇 남자들은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술잔을 기울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던 소가연도 역시 비싼 맞춤 드레스에 비싼 에메랄드 목걸이를 하고 있었지만 마른 체형이었던지라 그 고급스러움을 받쳐주지 못했고 눈부시게 화려한 진한나와 비교되어 초라한 백합처럼 보였다. 스포트라이트를 완전히 빼앗긴 소가연은 표정이 굳어졌고 어색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진한나는 일부러 반짝이는 바닥에 하이힐 소리를 또각또각 내며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고는 매혹적인 눈빛으로 고건우를 보았다. 고건우의 심장이 두근두근 요란하게 뛰었고 두 눈에는 놀라움과 불쾌감으로 가득 차올랐다. 주변에서 진한나의 몸매를 평가하는 소리가 들리자 고건우는 자신의 물건을 남이 탐내는 듯한 기분이 들어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막 진한나에게 한마디 쏘아붙이려던 순간 진한나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하연우에게 다가갔다. 백옥같이 하얀 팔을 자연스럽게 하연우의 팔에 두르며 애교 부리듯 살짝 흔들었다. “뭐예요. 같이 오기로 해놓고 왜 먼저 가버렸어요. 나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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