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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그 편지는 우리 결혼식 직전에 배현민이 홍시연에게 쓴 것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편지는 홍시연이 보낸 답장이었다. [현민 씨, 현민 씨 편지는 이 편지 속에 함께 넣어서 돌려보낼게요.] [현민 씨, 나는 지금 행복해요. 나는 현민 씨가 내 행복을 빌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내게 연락하지 말아줘요. 남편이 오해할까 봐 걱정되거든요.] 두 통의 편지를 다 읽고 나니 모든 것이 퍼즐처럼 맞춰졌다. 배현민은 홍시연을 짝사랑했지만 동시에 홍시연을 미워했다. 나는 저도 모르게 힘주어 청소기를 쥐었다. 배현민이 홍시연을 미워한 이유는 홍시연이 그를 배신했었기 때문이다. 배현민은 홍시연이 저질렀던 잘못을 용서하자고, 홍시연이 준 상처를 신경 쓰지 말자고 자신을 설득했다. 홍시연이 그의 곁으로 돌아온다면 말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홍시연은 또 한 번 그를 거절했다. 나는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결혼식 날, 배현민의 친구들이 홍시연을 언급했을 때 배현민이 왜 그렇게 화를 냈었는지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된 걸까? 배현민은 무엇 때문에 이 두 통의 편지를 꺼낸 것일까? 이 편지를 보고 홍시연이 얼마나 매정했었는지를 상기하면서 앞으로 홍시연과 거리를 두겠다고 다짐하는 동시에 나와 열심히 가정을 꾸려가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아내를 배신했다는 욕까지 먹으며 모든 것을 내던졌는데, 또 한 번 홍시연에게 버림받을까 봐 두려운 것일까? 나는 눈을 감았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배지욱의 말처럼 배현민이 사랑하는 것은 오직 홍시연뿐이었다. 그래서 배현민은 홍시연과의 미래를 고려할 때, 그의 선택이 내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한 번도 고려하지 않았다. 삑. 나는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릴 때까지 오랫동안 서재에 서 있었다. 너무 괴로워 아무런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던 심장이 그제야 다시 감각을 되찾았다. 나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 전화 너머 배현민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층 더 낮고 매력적이었다. 그는 다정하게 물었다. “뭐 하고 있었어?” 배현민은 내 앞에서 늘 이토록 다정하고 너그러웠다. 낯선 도시에서 살게 된 내가 혹시라도 불안감을 느낄까 봐 걱정되는 것처럼 말이다. 배현민은 항상 날 포용해 주었고 심지어 내게 상처를 줄까 봐 늘 한없이 부드러운 말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그것에 만족감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이젠 배현민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가 사랑하는 그를 위해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으로 와서 기대를 가득 안고 그와 결혼식을 올렸을 때 정작 배현민은 홍시연이 자신에게 되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어쩌면 배현민은 나의 존재가 그와 홍시연 사이에 방해가 되었다고 친구에게 하소연한 적이 있을지도 몰랐다. “왜 아무 말도 없어?” 내가 대답하지 않자 배현민은 조금 의아해했다. 나는 어떻게 배현민을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하는 건 적절치 않았다. 나는 책상 위 사진과 편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청소하고 있었어.” “내가 자기한테 전화한 건 할 말이 있어서야...” 배현민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내 책상 위에 아주 중요한 회사 기밀문서가 있거든. 그러니까 서재는 청소하지 않아도 돼. 집에 돌아가면 내가 알아서 치울게.” 예전이었다면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나도 볼 수 없는 문서냐면서 장난을 쳤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한참 뒤에야 겨우 대답했다. “알겠어.” 배현민은 전화를 끊었고 나는 청소기를 들고 서재에서 나왔다. 배현민은 무엇 때문에 그 두 통의 편지를 보는 걸 원치 않는 것일까? 나와 결혼했을 때 배현민이 나를 별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슬퍼할까 봐? 아니면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홍시연이었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될까 봐? 그것도 아니라면... 배현민은 나를 버린 뒤 배지욱을 데리고 홍시연과 가정을 이루려고 몰래 계획이라도 꾸미고 있는 걸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마음이 차게 식었다. 나는 오랫동안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던 부부의 모습이 사실은 그저 한낱 신기루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띵동. 나는 초인종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배현민의 퇴근 시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걸어가서 문을 열었지만 배지욱은 없었다. 이상했다. 평소 배현민은 퇴근할 때 유치원으로 가서 배지욱을 꼭 데려왔었기 때문이다. “지욱이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아서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대.” 배현민은 다가와서 나를 안으며 말했다. “우리 둘만의 시간을 보낸 지도 꽤 오래됐잖아. 그래서 지욱이는 할머니 집에 맡기고 왔어.” 배현민은 내 어깨에 턱을 올려두면서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 “여보.” 나는 어떤 표정으로 그를 마주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한 번 싹튼 의심의 씨앗이 마음속에서 끝없이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배현민은 나를 매우 사랑하는 척했으나 그때도 그는 홍시연을 잊지 못했다. 그리고 배현민은 지금도 나를 굉장히 아끼는 척했다. 나는 배현민이 진짜로 나를 사랑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멈출 수도 없었다. 배현민은 내 배 위에 손을 올리고 살살 쓰다듬었다. 나는 정신을 차렸다. “왜 그래?” 배현민은 떠보듯 물었다. “우리 아이 한 명 더 가질까?” 나는 당황했다. “왜?” “오늘 회사에서 많이 생각해 봤거든.” 배현민이 느긋한 어투로 말했다. “나는 한때 홍시연을 매우 좋아했어. 하지만 홍시연이 돌아온 뒤 다시 만나 보니까... 당신이랑 함께한 나날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저도 모르게 몸을 돌리며 배현민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배현민은 진지한 표정이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 앞으로 나랑 잘 살면...” 배현민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받쳐 들고 웃으면서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지욱이를 할머니 집으로 보내는 길에 지욱이랑 얘기를 나눠봤거든. 지욱이는 동생을 갖고 싶대. 너도 알다시피 나는 줄곧 아이 둘을 낳고 싶었어. 그러니까 여보... 날 거절하지 말아 줄래?” 배현민은 애정 어린 눈빛을 해 보이며 나를 유혹했고, 나는 그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는 이미 아들이 있었다. 만약 딸이 한 명 더 생긴다면... 배현민이 마음을 정리하고 나와 열심히 가정을 꾸릴지도 모른다. 배지욱도 동생이 생기면 오빠, 또는 형으로서 책임감이 생겨 철이 들고 의젓해질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미래가 나를 유혹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배현민은 내가 동의하자 내 허리에 팔을 감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내 머리를 받치며 키스를 퍼부었다. 나는 눈을 감고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속으로 배현민이 진짜 바람을 피운 것은 아니고, 홍시연과 선을 긋겠다고 약속도 했으니 괜찮을 거라고 되뇌었다. 그리고 배지욱은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가르치면 서서히 바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아주 평범한 가족처럼 살아갈 것이다. 삑. 휴대전화 벨 소리가 뜨거워진 방 안의 분위기를 식혔다. 배현민은 발신자가 누군지 확인하지도 않고 전화를 꺼서 옆에 던져두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휴대전화 화면에 뜬 이름을 보았다. 그 순간 온몸의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이 들어 배현민을 힘껏 밀어냈다. “홍시연 씨에게서 전화가 왔네.” 배현민은 홍시연의 연락처를 차단할 거라고 했었는데 홍시연이 어떻게 그에게 연락할 수 있는 것일까? 배현민은 나를 바라볼 새도 없이 바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현민 씨, 어떡해요? 지욱이가 배탈이 나서 입원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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