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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뭐라고?’ 짧은 한마디였지만 나는 오랫동안 정신을 다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배현민을 바라보았다. 배현민은 배지욱을 시어머니 집에 보냈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배지욱의 몸 상태를 잘 알고 있었기에 배지욱에게 아무거나 먹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배지욱이 왜 병원에 갔단 말인가? 그리고 홍시연은 어떻게 배지욱의 상황을 알고 있는 것일까? “어느 병원이야?” 배현민은 황급히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서 입었다. 홍시연은 전화 너머로 울먹대며 그에게 어느 병원인지 얘기해 주었다. 나는 배지욱이 걱정되었기에 배현민을 따라갔고, 배현민은 그제야 내 존재를 알아챘다. 나는 내 안색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 나는 폭발하기 일보 직전인 상태였지만 애써 화를 삭였다. 배현민은 문을 열고 차에 탔고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가는 길에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 머릿속은 온갖 정보들로 혼란스러웠고, 나는 20여 분 동안 차 안에서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배현민은 배지욱과 함께 홍시연과 완전히 인연을 끊겠다고 했지만 나 몰래 아이를 홍시연에게 보냈다. 그리고 내가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고 나와 둘째를 가지고 싶다는 핑계를 대며 내 판단력을 흐리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 집안에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들의 마음은 이미 오래전에 내가 아닌 홍시연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 병원에 도착한 뒤 나는 곧장 주사실로 향했고, 널따란 방 안에 배지욱이 홀로 덩그러니 있는 걸 보았다. 배지욱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 벽에 기대고 있었는데 이미 잠이 든 상태였다. 나는 배지욱의 곁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아이의 잠든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마음이 아픈 이유는 배지욱이 아직 어려서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철이 든 어른들은 배지욱이 위장이 약하다는 걸 알면서 아이가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먹게 방임했고 그 탓에 배지욱은 자주 입원해야 했다. 그리고 화가 나는 점은... 배지욱을 병원으로 보낸 장본인이 아이의 곁을 지키지 않고 아이를 홀로 이곳에 남겨두었다는 점이다. 배지욱이 무서워하든 말든 관심조차 없는 듯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러고 나서 배지욱의 곁에 앉았고 혹시라도 아이를 깨우게 될까 봐 아이의 머리를 받쳐 들어 내 품에 기대게 했다. “여지안, 내 아들은 너를 소중히 여겨서 네가 전업주부로 지낼 수 있게 해줬어. 그러면 집에서 아이라도 잘 돌봐야지. 이게 뭐야?” 날카로운 비난이 문가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배현민의 어머니 안효성이 보였다. 뒤늦게 도착한 안효성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는 듯 나를 매섭게 몰아붙였다. “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지욱이가 하루건너 아픈 거야?” 안효성은 모든 책임을 나한테 떠넘기려고 했다. 나는 시댁 어른들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배현민이 난감해할까 봐 웬만하면 참고 넘겼다. 그러나 배지욱의 일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배지욱의 일에서만큼은 절대 물러설 수 없었다. 나는 잠이 든 배지욱이 혹시라도 잠에서 깰까 봐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분노를 감출 수는 없었다. “어머님, 지욱이가 누구 때문에 앓게 됐는지는 어머님이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실 텐데요.” “당연하지!” 안효성은 차갑게 웃었다. “여지안, 지욱이는 너랑 제일 오래 같이 있었어. 네가 제대로 돌봤다면 지욱이 위장이 조금만 뭘 잘못 먹어도 걸핏하면 입원할 정도로 약해지지 않았을 거야.” 나는 고개를 들어 안효성의 눈을 바라봤다. 오후 내내 쌓였던 불만이 끝내 터져 나오는 바람에 나는 참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제가 지욱이를 돌봤을 때 지욱이는 한 번도 위장 문제로 입원한 적이 없어요.” 안효성은 말문이 막혔다. “너...” 나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어머님께서 지욱이가 보고 싶다고, 현민 씨한테 퇴근해서 지욱이를 집으로 데리러 오라고 한 뒤로부터 지욱이 위장에 자주 문제가 생겼죠. 그래서 제가 얘기 드렸었잖아요. 지욱이는 아무거나 먹이면 안 된다고 말이에요. 그런데 다들 어떻게 하셨죠?” 나는 시댁 식구들에게 불만이 많았다. 예전에는 큰 문제가 아니고 또 다들 지욱이를 아끼기 때문에 한 번 당부하면 앞으로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너무 좋게 생각한 듯했다. “다들 제 말을 귓등으로 들었을 뿐만 아니라 지욱이를 홍시연 씨에게 보냈죠. 제 아이를 저희 부부 사이에 끼어들려는 내연녀 홍시연 씨와 가까워지게 하려고 말이죠. 오늘도 마찬가지고요. 현민 씨는 집으로 돌아와서 제게 지욱이를 할머니 집에 보냈다고 했어요. 그런데 몇 시간 뒤에 지욱이는 홍시연 씨 집에서 뭔가를 잘못 먹고 토하고 설사하다가 병원에 실려 왔어요. 그 뒤에는 어떻게 됐죠?” 나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보았던 광경을 떠올리고는 괴로워했다. “홍시연 씨는 그냥 가버렸어요. 어린 지욱이를 이곳에 홀로 남겨두고 말이에요.” 안효성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내 말에 반박하려고 했으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머님.” 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머님께서 저를 못마땅해하시는 거 알아요. 그리고 어머님께서 인정하는 며느리가 홍시연 씨 한 명뿐이라는 것도 알아요... 어머님께서 저를 싫어하시고 저를 괴롭히시는 거, 저 다 견딜 수 있어요. 하지만 지욱이는 어머님 손자예요. 게다가 아직 나이도 어린데... 지욱이는 견디지 못한다고요!” 안효성은 늘 고분고분하던 며느리가 갑자기 자기 말에 반발할 줄은 몰랐는지 뒤늦게 반응을 보이며 욕설을 퍼부으려고 했다. 그녀는 자기 말을 따르지 않는 나를 꾸짖으려고 했다. 그런데 안효성이 입을 열기도 전에 배현민이 달려와서 그녀의 말허리를 끊었다. “어머니, 적당히 하세요.” 배현민은 나와 시댁 식구들 사이에 갈등이 생길 때마다 늘 내 편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더 헌신했다. 안효성은 아들이 내 편을 들자 더욱 화를 냈다. “양심 없는 놈. 네 아내가 방금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못 들었어?” 배현민은 차가운 얼굴로 내 옆에 서면서 말했다. “지안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안효성은 말문이 막혔다. 배현민이 이어서 말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잖아요. 앞으로는 홍시연과 연락하지 않을 거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저 몰래 지욱이를 홍시연에게 보낼 수 있어요? 이 일은 이미 우리 부부 사이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의아한 얼굴로 배현민을 바라보았다. 배현민도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안효성은 할 말이 매우 많은 듯했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나의 모든 신경은 배지욱에게 쏠려 있었다. 안효성에게 쓸 시간이나 여력은 없었다. 나는 고민 끝에 마음을 먹고 말했다. “어머님, 앞으로는 지욱이 어머님께 보내지 않겠어요.” 나는 홍시연이 언제부터 내 아들과 만나기 시작했는지 알지 못했으나 오늘부터 두 사람은 더 이상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나는 더 오래 배지욱의 곁에 있으면서 배지욱을 가르칠 것이다. 내가 인내심을 발휘한다면 배지욱은 틀림없이 예전처럼 건강하고 착한 아이가 될 것이다. 안효성은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반대했다. “안 돼!” 나는 안효성의 의견을 물은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통보한 것이다. 안효성이 반대하든 동의하든 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안효성은 내가 대꾸하지 않자 배현민을 바라보았다. 배현민이 말했다. “저는 지안이 말에 동의해요.” “너희들!” 안효성은 불같이 화를 냈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대치했고, 안효성은 우리가 타협하려고 하지 않자 그냥 떠나버렸다. 그렇게 주사실에는 나와 배현민, 배지욱 세 사람만 남았다. 나는 배지욱을 안고 있었고 배현민은 내 옆에 앉았다. 배지욱은 깊이 잠들어 있다가 주사를 뺄 때 갑자기 놀라면서 눈을 떴다. 배지욱은 흐리멍덩한 두 눈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배지욱의 등을 토닥이면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가, 무서워하지 마. 엄마 여기 있어.” 배지욱은 입을 비죽이면서 짜증 난 얼굴로 말했다. “전부 엄마 때문이야. 왜 병원에 온 거야?” 엄마라서 그런지 배지욱이 나를 향해 화를 내고 있음에도 나는 배지욱의 화가 난 모습까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오지 않기를 바란 거야?” “그럼.” 배지욱은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 “엄마가 안 왔으면 시연 이모가 분명 내 곁에 있어 줬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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