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화
배현민이 쪼그려 앉아 앞에 서 있는 배지욱과 눈을 맞추고는 억지로 웃으며 설명했다.
“엄마가 며칠 전엔 뱃속에 있는 아기 때문에 몸이 힘들어서 기분이 안 좋았던 거야. 그래서 너한테 잘 못 해준 거고. 요 며칠 스스로 많이 반성했대.”
“지욱아, 엄마를 용서해 줄 수 있겠니?”
배지욱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고 홍시연은 애써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지욱아, 엄마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 될까?”
아이는 고개를 떨궜다.
사실 거절하고 싶었지만 금세 알아차렸다.
이건 아빠가 직접 홍시연을 두둔하며 만든 변명이라는 걸.
즉, 배현민은 자신이 받아들이길 바란다는 뜻이었다.
만약 고개를 저어버리면 그는 분명 자신을 ‘철없다’며 혼을 내고 억지로라도 허락하게 만들 것이다.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배지욱은 바보가 아니었기에 잠시 망설이던 아이는 마침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자 홍시연은 기다렸다는 듯 아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럼 지욱이가 갖고 싶은 거 말해봐. 엄마가 사줄게!”
그녀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가벼웠고 어딘가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그동안 배지욱에게 상처 준 일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배지욱이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눈만 굴리자 홍시연이 슬쩍 떠보듯 말했다.
“게임기? 아니면 장난감?”
순간, 아이는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여지안.
그녀는 늘 게임이나 전자기기는 조금만 보고 밖에서 뛰노는 게 몸에 좋다고 잔소리처럼 말했다.
그때는 그게 참 귀찮고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 홍시연이 자기를 달래겠다며 전자기기를 사주려 하자 오히려 여지안이 떠올랐다.
‘누군가 나를 위해 잔소리를 해주는 것도 행복일 수 있구나.’
배지욱은 두 ‘엄마’의 차이가 점점 또렷하게 보였다.
친엄마였던 여지안은 늘 아이의 건강과 미래를 생각했다.
반면, 새엄마인 홍시연은 그저 지금 즐겁게 해주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배지욱의 몸이 어떻든, 나중에 어떤 결과가 오든 개의치 않았다.
아이는 예전에 몰랐던 걸 이제야 다 깨달았다.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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