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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다음 날, 서은수는 신선한 백합 한 다발을 사 들고 요양원으로 어머니를 뵈러 갔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그녀는 입구에 버티고 선 두 명의 건장한 경호원을 보았다. 불길한 예감이 순식간에 온몸을 덮쳤다. 서은수는 꽃을 내려놓고 안으로 뛰어들려 했지만, 경호원들이 손을 뻗어 막았다. “사모님, 지금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서은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돌변하더니 찰진 소리와 함께 두 명의 경호원에게 귀싸대기를 날렸다. “꺼져!” 문을 박차고 들어서자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었다. 양복 차림의 강지훈이 병상 옆에 태연하게 앉아 있었고, 네댓 명의 의사들이 그녀 어머니 나경미 주위에 둘러싸여 있었다. 굵은 바늘이 그녀의 야윈 팔에 꽂혀 있었고, 붉은 피가 튜브를 따라 혈액 주머니로 콸콸 흘러 들어갔다. 안 그래도 창백한 얼굴이 이제 서서히 잿빛으로 변해갔다. “엄마!” 서은수는 미친 듯이 달려들어 의사들을 밀치고 바늘을 거칠게 뽑아버렸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피가 새어 나오는 바늘구멍을 꽉 누르며 강지훈에게 소리쳤다. “또 무슨 짓이야, 강지훈?” 강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잔잔했지만, 내뱉은 말은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너 때문에 승아가 온 동네의 웃음거리가 됐어. 애가 충격받고 손목을 그었는데 지금 당장 수혈이 시급하대.” “승아는 팬더 혈액이라 도시 전체를 뒤져도 부합된 사람이 너희 엄마밖에 없더라.” 서은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그녀는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 “우리 엄마한테 한 번만 더 손대면 그땐 도승아를 죽여버리는 수가 있어!” 그녀의 눈가에 전례 없는 광기와 결연함이 담겼다. 하지만 강지훈 또한 단호하게 손을 흔들었다. “계속 뽑아. 여유분을 더 준비해.” 경호원 네댓 명이 즉시 다가와 서은수를 꽉 붙잡았다. “강지훈!” 그녀는 목이 터지도록 고함을 질렀다. “엄마가 비록 식물인간이어도 의사 선생님은 의식이 있다고 했어. 고통도 느끼고 모든 걸 다 아신다는 말이야!” “몸이 약해서 피 뽑으면 죽을 수도 있어.” 다만 이 남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서은수는 굵은 바늘이 다시 엄마의 혈관에 꽂히는 것을 눈 뜨고 지켜보았다. 원래 옅은 붉은색이었던 입술이 급격히 창백해졌고, 꼭 감은 눈가 가장자리에서 투명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엄마!” 서은수는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았다.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더니 목덜미에서 갑자기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진정제가 체내에 주입되자, 그녀는 온몸에 기운이 쫙 빠져서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그녀는 강지훈의 꼿꼿한 등 뒤로 차가운 빛이 감도는 것을 보았고, 어머니 얼굴에 찍힌 눈물의 흔적도 보았다. 끝까지 고집스럽게 손으로 바닥을 짚었지만, 결국 힘없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서은수는 길고 고통스러운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어머니는 평생을 떠돌아다녔지만, 언제나 그녀를 품에 안고 애지중지 키웠다. 나중에 어머니가 뇌종양에 걸려 병세가 날로 악화되었다. 의식을 잃기 전, 어머니는 울면서 그녀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은수야, 네가 예쁘고 똑똑한 건 복을 불러올 수도 있고 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니 우리 함께 운명을 받아들이고 평범하게 살자.” 다만 서은수는 고집스럽게 반박했다. “엄마, 저는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제가 꼭 엄마 모시고 좋은 삶을 살게 해줄 거예요.” 그녀는 어머니를 꽉 끌어안았다. 다음 순간, 따뜻한 품이 끈적한 피에 젖었고, 엄마의 얼굴이 녹아내려 그녀의 품에서 피와 살덩이로 변해갔다. “엄마!” 서은수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온몸이 식은땀에 흠뻑 젖은 채 요양원 병상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불을 걷어내고, 그녀는 맨발로 어머니의 병실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과다 출혈로 중환자실에 옮겨졌다고 했다.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고 싶은 분노가 가슴속에서 타올랐다. 그녀는 도승아가 입원한 병원을 알아내 미친 듯이 그곳으로 질주했다. 병원 최상층의 VIP 병실은 시설이 완비되어 있었고, 병원의 절반에 달하는 의료진이 도승아 한 사람을 위해 봉사했다. 이로써 강지훈이 그녀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 문 앞의 경비원이 규정대로 막아섰다. “여기는 VIP 병실입니다. 관련자 외 출입금지입니다.” 서은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손에 든 혼인신고서를 흔들어 보이고 곧장 안으로 쳐들어갔다. 병실 안, 도승아는 손목에 붕대를 감고 다섯 명의 간병인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어떤 이는 그녀에게 사과를 깎아주고, 또 어떤 이는 발을 주물러 주었다. 이보다 더 편한 삶이 있을까. 서은수를 보자, 그녀는 눈썹을 찌푸리며 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쟤가 여길 어떻게 들어왔지? 당장 내쫓아!” 간병인들은 서로를 쳐다보았고, 서은수는 단 두 글자만 내뱉었다. “나가.” 이혼하지 않는 한, 그녀는 명실상부한 강지훈의 아내이니 아무도 감히 그녀의 명령을 무시할 수가 없다. 간병인들은 재빨리 방에서 물러났다. 서은수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혼인신고서를 도승아의 얼굴에 던졌다. “네가 쓴 돈 십 원 한 장까지 나랑 강지훈의 공동재산이야. 내가 왜 못 들어와?” “야, 서은수! 뭔가 착각하나 본데, 지훈이가 사랑한 사람은 나야. 미래 강씨 가문 사모...”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서은수가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손목에 감긴 붕대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상처 하나 없이 온전한 피부, 손목을 그은 흔적이라곤 도통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한답시고 강지훈은 정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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