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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신지환이 가자마자 초인종이 울렸다. 여다현이 문을 열어보니 한 여자가 서 있었는데 손에는 정교한 도시락까지 들려 있었다. “안녕하세요. 이제인이에요. 여다현 씨에게 문자를 보낸 그 이제인이에요.” 이제인의 미소는 부드러우면서도 도발로 가득했다. “요즘 지환이가 나 많이 챙겨줘서 디저트를 좀 만들어왔어요. 여기까지 왔는데 문전박대할 건 아니죠?” 여다현이 대답하기도 전에 멋대로 안으로 들어간 이제인은 누가 안내하기도 전에 집을 구경하기 시작했고 정원을 지나다 걸음을 멈추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장미인데 아직도 정원에 가꿀 줄은 몰랐네요.: 여다현은 신지환이 아침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법이 없이 직접 장미를 가꾸던 게 생각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어쩌면 신지환의 취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연못가에 거북이 몇 마리가 느긋하게 해볕 쬠 했다. “어머, 아직도 살아있었네.” 이제인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어릴 때 기르다가 출국하면서 버리고 가는 바람에 죽은 줄 알았는데.” 여다현은 신지환이 잊지 않고 매일 제시간에 거북이에게 먹이를 주던 게 떠올라 가슴이 먹먹했다. 거실로 들어간 이제인은 진열장에 든 인형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도 다 내가 아끼던 소장품이에요.” 곧이어 주변을 빙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가구 스타일도 다 내가 좋아하는 유럽풍이네.” 이제인의 뒤를 따르는 여다현은 칼날이라도 밟고 지나가는 것처럼 너무 아팠다. 2년을 생활한 집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안방으로 들어간 이제인은 옷장에 진열한 넥타이를 살살 어루만졌다. “이것도 다 내가 선물한 거예요. 이렇게 잘 보관했을 줄은 몰랐네요.” 여다현은 매일 옷을 다리던 자신을 떠올리며 목구멍이 꽉 막혔다. 넥타이만큼은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신지환을 보며 결벽증이겠거니 했는데 알고 보니 이제인의 흔적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마지막으로 이제인의 걸음이 멈춘 곳은 웨딩사진이었다.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이제인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전에 지환이랑 얘기할 때 세 가지 테마로 찍고 싶다고 했거든요. 사막, 바다, 숲. 근데 두 사람도 이 세가지 테마로 찍었네요.” 순간 여다현의 안색이 하얘졌다. 웨딩 촬영하면서 신지환이 기어코 이 세 가지 테마를 우기길래 여다현은 신지환이 어쩌면 대자연이 주는 낭만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신지환의 목소리가 현관에서 들려왔고 이내 어두워진 표정으로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인이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디저트를 좀 만들었는데 나눠주고 싶어서. 와이프가 되게 열정적으로 안내하던데? 같이 식사도 하재.” 신지환의 미간이 좀 풀리는 듯 싶더니 여다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인이라고 옆집 동생이야. 어릴 적부터 가족처럼 지냈고 출국했다가 얼마 전에 돌아와서 만난 적은 없을 거야.” 여다현이 신지환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옆집 동생? 가족?’ 신지환은 두 사람의 사이를 잘도 숨겼고 이제인도 이에 협조했다. “맞아요. 지환이가 어릴 적부터 많이 챙겨줬죠. 편식하니까 요리까지 배워서 밥을 해주더라고요. 탕수육, 고등어조림, 갈비찜, 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요리인데.” 여다현은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갈 만큼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제인이 말한 요리는 신지환이 제일 자주 하는 요리였는데 여다현은 순진하게도 그녀가 좋아해서 만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더는 웃고 있기 힘들었던 여다현이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자리를 비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인이 약 한 사발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에게 좋다는 약이라면서 지환이가 직접 다렸어요. 가져다주라고 하던데 따듯할 때 마셔요.” 이제인이 순진한 척 웃으며 말했다. 그릇을 받으려는 순간 약 냄새가 코를 찔러 여다현은 속이 메슥거렸다. “아참...” 이제인이 입을 열었다. “설마 아이 이름, 남자면 호수, 여자면 소망이에요? 이 이름도 전에 지환이랑 얘기했던 이름인데.” 여다현은 손이 떨려 하마터면 그릇을 엎을 뻔했다. 이 두 이름은 여다현이 갓 임신했을 때 신지환이 지은 이름이었다. 곧 태어날 아이까지 이제인을 그리워하는 데 쓰려고 했다는 생각에 여다현은 심장이 아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야.” 그때 이제인이 “부주의”로 그릇을 엎는 바람에 뜨거운 약이 그대로 여다현의 손에 엎어지면서 물집이 올라왔다. 여다현은 너무 아파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이제인이 사과했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연고를 찾으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는데 계단으로 받을 내딛으려는 순간 누군가 뒤에서 힘껏 그녀를 밀어버렸다. “아악.” 여다현이 그대로 아래로 굴러 일 층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빨간 피가 몸에서 새어 나와 아이보리색 러그를 물들였다. 그때 이제인도 따라서 계단에서 미끄러졌다. 주방에서 냉장고를 열려던 신지환이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다가 이 장면을 보고는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제인아.” 쏜살같이 이제인에게로 달려간 신지환이 휘청거리는 그녀를 부축하며 발목을 살폈다. “괜찮아?” “나... 나는 괜찮아.” 이제인이 허약하게 말했다. “다현 씨부터 봐봐...” 신지환의 시선이 그제야 피 못에 쓰러진 여다현에게로 향하는데 순간 이제인이 그대로 신지환의 품에 “쓰러졌다.” “제인아.” 차분하기만 하던 신지환의 목소리는 어느새 다급해졌고 이제인을 번쩍 안아 든 채 여다현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성큼성큼 밖으로 향했다. 여다현은 그런 신지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의식이 흐릿해졌다. 어둠이 완전히 드리워지기 전 여다현은 냉장고가 스르륵 열리고 “선물함”의 한 귀퉁이가 드러나는 걸 보았다. 다시 깨어났을 때 눈 부신 불빛에 여다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의사가 여다현의 몸을 검사하는데 신지환이 무거운 표정으로 옆에 서 있었다. “아이는 어떻게 됐나요?” 신지환이 묻자 의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이요? 아이는 진작 중절 수술로 지우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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