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집으로 돌아온 여다현은 재산 문서를 척척 정리하기 시작했다. 신지환의 카드, 주얼리, 부동산 서류를 하나씩 테이블에 꺼내놓으니 그동안 얼마나 황당한 꿈을 꿨는지 알 것 같았다.
3일 후, 퇴원한 신지환이 잘빠진 슈트를 입고 꼼꼼히 넥타이까지 하고 현관에 나타났는데 목숨이 오갈 정도로 크게 다친 것 같지가 않았다.
“자기야, 요즘 회사가 너무 바빠서 내가 소홀했어.”
신지환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숨긴 채 여다현을 안으려는데 몸에서 옅은 소독수 냄새가 났다. 아마도 시간이 길어지면 여다현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부랴부랴 퇴원한 것 같았다. 다만 신지환은 여다현이 옆에서 모든 과정을 목격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가 다른 여자를 위해 목숨까지 마다한 걸 똑똑히 지켜봤는데 말이다.
“아이는 요즘 어때?”
신지환이 이렇게 물으며 여다현의 아랫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한약은 먹고 있어? 왜 배가 작아진 것 같지?”
신지환이 여다현의 배를 만지려는데 여다현이 반사적으로 한걸음 물러섰다.
“몸이 안 좋으니까 건드리지 마요.”
여다현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신지환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얼른 도우미를 불러 여다현이 요즘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고 한약을 챙겨 먹지 않았다는 말에 어두운 표정으로 약을 덥히러 주방으로 향했다.
“자기야. 착하지.”
신지환이 그릇을 들고 부드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몸을 위해서라도 약 먹어. 그래야 애 낳을 때 고생을 덜지.”
여다현은 사발에 담긴 짙은 갈색의 액체를 내려다보며 둘러댈 핑계를 찾으려는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신지환의 몇몇 친구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그를 찾아온 것이다. 신지환은 어쩔 수 없이 여다현에게 쉬라고 얘기하고는 그들을 데리고 서재로 향했다. 발소리가 멀어지자 약을 싱크대에 들이부은 여다현이 안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서재에서 치열한 토론 소리가 들렸다.
“지환아, 제인이네 집에서 정략결혼을 하라고 강요했는데 제인이가 거절해서 지금 집에 갇혀있대. 며칠 뒤에 바로 결혼식을 올리게 할 생각인가 봐. 그러면 고집을 부려도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쾅.
찻잔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차갑지만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았어.”
“알았다니, 무슨 말이야?”
다른 친구가 물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신지환이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하게 놔두지 않을 거라는 말이야.”
서재가 시끌벅적해졌다.
“그게 무슨 말이야? 결혼식 파투 내기라도 하게?”
“지환아, 진정해. 너 가정이 있는 사람이야. 몇 달 지나면 아이의 아빠고.”
“결혼식 파투 내면 사람들이 다현 씨를 뭐라고 하겠어?”
“물론 아이에게도 영향이 갈 거야.”
“다현 씨가 이혼하자고 하면 어떡해?”
친구들이 말리는데 확신에 찬 신지환의 소리가 그 소리를 가볍게 눌렀다.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절대 다현이 귀에 전해지지 않게 할 거야.”
“그러다 알기라도 하면?”
잠깐 침묵이 흐르는가 싶더니 신지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알면 어때서? 달래주면 되는데.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떠나진 못할 거야.”
밖에서 듣고 있던 여다현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손을 가슴으로 가져다 댔지만 그저 조금 답답하기만 할 뿐 예전처럼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은 없었다. 이제 하나둘 내려놓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제 정말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