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김우연은 아주 깊고 달게 잠들었다.
그는 꿈도 꾸었다. 자신이 다시 진씨 가문으로 돌아간 꿈이었다.
그를 키워 준 그 집은 삶이 담백했지만 이렇게까지 다툼이 많지는 않았다. 양부모는 그를 친아들처럼 보살폈고 할 만큼은 다 해 주었다.
그런 달콤한 꿈에 잠겨 있는데...
쿵쿵쿵!
다급한 노크 소리가 터져 나오며, 김우연은 순식간에 잠에서 깼다. 그는 눈을 비비고 마지못해 침대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자 분노가 서린 또렷한 얼굴이 딱 마주했다.
“밥 먹어!”
큰누나 김지유가 차갑게 말했다.
“명헌이가 너를 부르러 여덟 번이나 왔어. 넌 줄곧 안에 숨어 있기만 했지. 도대체 누구 보라고 쇼하는 거야?”
‘음? 나를 불렀다고?’
김우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신경쇠약 때문에 잠이 얕았다. 작은 소리에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예전에는 방 안에서 클럽 음악을 크게 틀어 놓은 소리가 문을 닫아도 늘 귀에 들어왔다. 하지만 화가 나도 말은 못 하고, 그저 묵묵히 참아야 했다.
그렇게 오래 쌓인 탓에, 수면이 심각하게 부족해졌고 신경쇠약까지 생겼다. 누가 자기를 불렀다면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를 어떻게 불렀는지부터 제대로 물어보죠.”
김우연이 냉담하게 말했다.
김지유의 표정이 더 차갑게 굳으며 대꾸도 없이 바로 돌아섰다. 김우연도 더 말하려 들지 않고 그대로 뒤를 따라 내려갔다.
한집안 식구가 전부 식탁에 둘러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대단하네. 이제 폼까지 잡으시겠다? 밖에서 길러 온 못된 버릇 여기서 부리지 마! 온 가족이 네가 오기를 기다리는 거, 그게 하나도 미안하지 않아?”
친아버지 김병훈은 굳은 얼굴과 불꽃이 이는 눈으로 김우연을 노려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앉아, 마치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가끔만 김우연을 흘겨보았다.
그들 모두 불만이 가득했다.
“미안함?”
김우연은 마음이 무거워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눈앞의 친아버지를 바라보면서도, 두 사람 사이에 은하수만큼의 거리가 느껴졌다. 부성애라고는 한 톨도 느껴지지 않았고 남은 건 냉기와 경직뿐이었다.
“아버지, 제 잘못이에요. 저는 그저 우연 형이 조금 더 쉬었으면 했어요. 제가 노크를 좀 더 크게 했다면 아마 깼을 거예요.”
김명헌은 입술을 꼭 다문 채 자책하는 얼굴을 했다. 지독하게 미안해 보였다. 마치 하늘 같은 누명을 뒤집어쓴 사람처럼 말이다.
“흥.”
김우연은 콧방귀를 뀌었다. 눈에는 조롱이 어렸다.
이렇게 가식적인 말투, 그는 너무도 많이 들어 왔다.
집안 사람들에게만 통하는 소리였다.
“흥은 왜 흥이야?”
김병훈이 즉시 버럭하며 대리석 식탁을 탁 내리쳤다. 청명한 소리에 모두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지난번 건강검진에서 저 신경쇠약 소견이 나왔어요. 소리만 나면 깬다고요. 김명헌이 정말로 저를 불렀을까요?”
김우연의 차가운 시선이 휙 스치듯 김명헌에게 가닿았다.
“무슨 개떡 같은 신경쇠약이야. 너는 매일 밤새 소설 보고 게임하는 버릇을 들였을 뿐이야!”
김병훈이 즉석에서 몰아붙였다.
“맞아요.”
김우연은 반박하지 않고 비웃음 섞인 미소만 지었다.
검진 결과가 나왔을 때도 김병훈은 똑같이 말했다. 자신의 증상을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버지, 우연이 형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요. 우리 얼른 밥 먹어요. 안 그러면 금방 식을 거예요. 큰누나, 둘째 누나, 엄마도 아직 못 드셨잖아요.”
김명헌이 살뜰히 말했다.
“우리 아들 참 효자구나.”
어머니 조서아는 흐뭇한 얼굴로 김명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에는 기쁨만 가득했다.
김우연은 다정하기만 한 친어머니를 보며 가슴 한편이 아팠다. 피가 이어졌다는 느낌을 그는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했다.
‘엄마, 정말 이런 사람이었나.’
“명헌이 봐서 이번 일은 내가 눈감아 줄게! 그릇이랑 젓가락 챙겨서, 밥이랑 반찬 퍼서 구석에서 먹어. 그리고 잘 생각해. 오늘 또 무슨 잘못을 했는지 나한테 똑바로 참회해!”
김병훈의 어조는 싸늘했다. 김우연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에 대해, 김씨 가문의 사람들도 다 익숙했다.
김우연이 밥을 먹을 때마다 대체로 늘 이랬다.
아니면 김명헌이 모함하고 고자질해 김우연이 누명부터 쓰거나. 아니면 김병훈이 김우연이 마음에 안 든다며 사소한 걸로 끝도 없이 물고 늘어지거나.
그런데 이번에 김우연은 움직이지 않았다.
김씨 가문 사람들은 전부 젓가락을 들어 식탁 위의 진수성찬을 즐겼다. 오직 김우연만이 그 자리에 고요히 서 있었다.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처럼 말이다.
눈앞의 이들이야말로 화목한 한 가족이고, 김우연은 그저 눈엣가시, 살 깎는 가시일 뿐이었다.
‘가족애? 다 개소리였어!’
“음? 왜 멍하니 서 있지? 귀까지 막혔냐?”
김병훈이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이때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돌려 김우연을 빤히 보았다. 얼굴에는 하나같이 놀란 기색이 스쳤다. 평소 같으면 그는 벌써 그릇과 젓가락을 들고 나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늘 참기만 하던 김우연이 어쩐 일로 말을 안 듣지 싶었다.
“제가 잘못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있다면 말씀해 보세요.”
김우연은 곧게 서서 당당히 버텼다. 이번에는 도망치지도, 물러서지도 않았다. 마치 김씨 가문의 부권에 맞서는 듯했다.
“정말 염치도 없구나! 네가 둘째 누나 씻는 걸 훔쳐보고, 둘째 누나 속옷을 훔쳐 간 건 잘못이 아니야? 그런 건 보육원이나 진씨 가문에서 배워 온 거지? 이건 단순한 잘못이 아니야. 윤리와 상도를 거스른 도덕의 붕괴야! 정말 역겹구나!”
김병훈은 이미 식욕을 잃었다. 곧장 밥그릇을 집어 던져 김우연을 향해 내던졌다.
유성이 스치는 듯, 쉭 하고 날아갔다.
팍!
도자기 그릇이 김우연의 머리를 정통으로 때리며 순식간에 산산이 부서졌다.
동시에 그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려 강물 갈래처럼 얼굴 위로 번져 갔다.
뚝!
뚝!
바닥으로 떨어진 피가 복슬복슬한 카펫을 서서히 적셨다.
그 순간, 다이닝룸 전체가 고요에 잠겼다.
김씨 가문 사람들 누구도 김병훈이 손까지 쓸 줄은 몰랐다.
게다가 김우연을 크게 다치게 했다.
김우연은 피하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김지유와 김슬기는 서로 눈을 맞추며 일이 커졌음을 깨달았다.
둘의 눈빛은 얼음같이 차가웠고, 김우연을 바라보는 데 관심이라고는 한 톨도 없었다.
조서아는 혹시나 연루될까 봐, 조심스레 김명헌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김명헌은 팔꿈치 사이 틈으로 냉랭하게 김우연을 노려보았다. 눈에는 득의와 오만이 점점 짙어졌다.
“너! 왜 피하지 않은 거야?”
김병훈의 얼굴에는 잠깐의 당황스러움이 스치며 따져 물었다.
김우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머리가 어지러울 뿐이었다.
피하고 싶었지만 약한 몸으로는 반응 속도가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잘됐다.
‘이렇게 된 이상 전부 말해 버리자.’
“일단 우연 도련님을 병원에 모시고 가서 상처부터 감싸야겠어요.”
한 도우미가 앞으로 나서 급히 말했다.
“아주머니, 번거롭게 그럴 필요 없어요.”
김우연은 조금 울컥했다.
이 넓은 김씨 가문에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잘해 주는 사람은 도우미 손명숙뿐이었다. 밥을 못 먹을 때면 언제나 그녀가 따로 음식을 마련해 방까지 가져다주었다.
“그냥 살짝 까진 정도네. 별일 없으면 화장실 가서 씻어. 네 발밑 카펫 진짜 가죽이야. 내 돈 수억 원이 들어갔어! 피 얼룩이 배서 안 지워지면 쫓겨날 줄 알아. 다시는 돌아올 생각하지 말라고!”
김병훈은 다시 예전의 냉혹한 태도로 돌아가 엄하게 호통쳤다.
“상처가 아니라 카펫부터 씻으라는 거군요.”
김우연은 이런 자신을 비웃는 듯 피식 웃었다.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예상 밖의 걱정은 없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마음은 오히려 더 편안해졌다.
하지만 얼굴을 타고 흐른 피는 어딘가 흉측했다.
“씻지 않겠습니다. 지금 당장 나갑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