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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그녀의 뻔뻔한 태도에 서이건은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 이내 성큼 다가가서 말했다. “결국은 돈 때문이잖아. 얼마나 뜯어내려는 건데? 내가 다 줄게!” 휴대폰을 꺼내 당장이라도 송금하려는 남자를 보자 이루나는 냉소를 지었다. “서이건 씨, 설마 내가 돈 때문에 다른 남자를 만난다고 생각해? 그건 큰 착각이야.” 그리고 소파에서 일어나 서이건 앞에 서서 똑바로 마주 보며 말을 이어갔다. “참고로 나랑 야식 먹었던 그 연하남이 바로 서태준이었어. 우리가 만난 지도 벌써 6개월이 넘었거든? 당신처럼 34살 먹은 늙다리랑은 비교도 안 돼. 젊고 활기 넘치며, 다정하고 낭만적인 데다가 내 마음조차 꽉 채워주는 그런 사람이야. 그래서 말인데 이런 완벽한 남자랑 달달한 연애 좀 해보려고. 돈? 그딴 건 너무 촌스럽잖아?” 서이건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간신히 억누른 채 꽉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둘이... 잤니?” 이루나는 코웃음을 쳤다. “당연하지. 이건 씨보다 스킬도 못지않던데? 나랑 완전 찰떡궁합이야. 6개월 동안 당신이랑 한 횟수를 이미 능가했을걸?” 짝!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이건이 손을 번쩍 들어 그녀의 뺨을 때렸다. 순간 넋을 잃은 이루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일 뿐, 온 힘을 다해 따귀를 날렸다. 짝! 남자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분이 덜 풀린 듯 긴 다리를 들어 힘껏 걷어찼다. 물론 결정적인 부위는 피해서 허벅지를 공격했지만 그를 아프게 하기에 충분했다. 서이건의 눈동자에 어느새 분노가 차올랐다. 그런데 마침 밖에서 들어오던 이은서가 그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이건 씨!” 이은서는 급히 달려와서 초조한 얼굴로 서이건을 살피며 물었다. “괜찮아요?” 뺨을 맞은 서이건의 입가에 피가 흘러내리자 그녀는 재빨리 휴지 한 장을 뽑아 상처를 닦아주었다. 그러고 나서 뒤돌아 분노 어린 목소리로 이루나를 향해 말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난리야? 제정신이야? 이렇게 심하게 때리다니!” 이루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받아쳤다. “네 약혼자가 방금 성추행하려고 해서 정당방위 했을 뿐이야.” 이은서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발끈하며 반박했다. “말조심해! 본인이 평판 안 좋은 거 뻔히 알면서 왜 애먼 사람한테 뒤집어씌우는 거야?” 더는 실랑이를 벌이기 싫은 이루나는 입을 꾹 닫았다. 하지만 이은서는 포기하지 않고 한발 나서서 잔뜩 경계하며 추궁했다. “여긴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야? 뭐 하러 왔는데?” 서이건의 가장 사적인 공간인 만큼 가족과 약혼자인 그녀를 제외하고 ‘외부인’은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네 남자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 내가 왜 설명해야 하지?” 이루나는 이 지긋지긋한 장소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이내 돌아서서 소파 위에 놓인 가방을 가지러 갔다. “대답해!” 이은서는 앞을 가로막으며 눈을 부릅뜬 채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내 알 바 아니지만 감히 이건 씨 앞에서 함부로 굴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래?” 이루나는 경멸과 조롱이 담긴 표정으로 비아냥거렸다. “얌전하고 착한 우리 금수저 아가씨가 벌써 본색을 드러내게? 참을성 많다면서 왜 나만 보면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지? 이미지 메이킹하려면 끝까지 유지해야지, 무너지는 거 한순간이라고.” 이은서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지만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루나는 그녀를 무시하고 소지품을 챙기더니 현관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서이건을 지나칠 때 복수심에 일부로 단단한 팔뚝을 슬쩍 건드렸다. 서이건은 숨이 멎는 듯싶었다. 이내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흘겨봤지만, 이루나는 요염한 미소를 띠며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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