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18화

이은서는 저주를 퍼붓고는 뒤돌아서 문밖으로 뛰쳐나가 서이건을 쫓았다. 원래 오늘 저녁은 모여서 약혼식 세부 사항을 논의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런데 이 지경이 되었으니 박희연도 화가 나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방금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이루나가 지금도 바닥에 주저앉아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일말의 죄책감조차 없었다. 오히려 악을 쓰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그녀를 욕했다. “이 썩을 년아,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골라서 사고 치는구나! 똑똑히 들어, 너 때문에 우리 딸이 결혼 못하면 가만 안 둘 거야...” “그만!” 이성태가 참다못해 박희연에게 호통쳤다. “지금 애가 다친 거 안 보여? 제발 입 좀 다물어!” 아무리 그래도 친부이지 않은가! 비록 이루나의 반항적인 행동들이 못마땅했으나 조금 전 아찔한 상황을 겪고 나니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았다. “일어나. 방에 가서 치료해줄게.” 이성태는 신경외과 교수였고, 집에 따로 의료실이 마련되어 평소 가족들이 잔병이나 작은 부상을 입었을 때는 바로 치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부축하려고 손을 뻗는 순간 이루나는 마치 감전이라도 당한 듯 홱 뿌리쳤다. 이내 이를 악물고 스스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박희연 씨, 그리고 당신!” 싸늘한 눈빛이 두 사람을 향했고,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두고 봐요. 오늘 나 못 죽인 거, 평생 가슴 치고 후회할 날 올 테니까.” 그리고 벙쪄 있는 틈을 타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비틀거리며 거실을 나섰다. 혼미한 정신으로 차에 올라탄 그녀는 앞길을 가로막은 이원호의 슈퍼카를 발견했다. 트렁크 쪽이 마침 가야 하는 방향이었다. 이내 시동을 걸고 풀 액셀을 밟아 차를 정통으로 들이받아 저 멀리 튕겨낸 뒤 쏜살같이 저택을 빠져나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이 뒤숭숭해서 운전 속도도 느려졌다. 오늘 이씨 가문에서 벌어진 일들을 떠올릴수록 가슴이 쿡쿡 쑤시고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머릿속으로 또다시 자신에 대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까지. 어머니의 이름은 박희수, 언니가 한 명 있었는데 그게 바로 박희연이다. 두 사람은 박씨 가문의 자매였다. 결정적인 차이라면 박희연은 입양아며, 박희수는 친딸이었다. 그런데도 박씨 부부는 두 딸을 공평하게 키웠고, 자매들도 나름 돈독하게 지냈다. 그 남자, 이성태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성태는 M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의학박사로, 집안도 좋고 외모 또한 준수해 누가 봐도 완벽한 존재였다. 그렇게 모든 이들의 축복 속에서 박희수와 부부의 연을 맺었고, 이듬해에는 딸 한 명을 낳았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루나가 세 돌도 되기 전에 박희수는 남편과 언니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 충격적인 건 두 사람 사이에 이미 사생아까지 있었다. 결국 극심한 충격과 배신감 속에 심한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28세의 젊은 나이에 투신자살하고 말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친딸을 잃은 박씨 부부는 깊은 슬픔에 빠졌고, 건강도 급격히 악화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 후, 일가족에게 더 큰 비극이 닥쳤다. 이루나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마저 수상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 이후로 박씨 가문은 사실상 핏줄이 끊긴 셈이었다. 당시 제약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매출이 엄청난 수준은 아니었지만 수천억은 되었다. 박씨 가문 사람들이 줄줄이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박셀바이오는 자연스럽게 박희연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양녀였던 박희연은 여동생을 죽게 만들고 남편마저 가로챈 뒤 당당하게 회사까지 상속받았다. 그로부터 20여 년 동안, 이성태와 오누이를 낳으며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을 꾸렸다. 이성태도 당시 한낱 전문의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국내 최고 수준의 신경외과 교수로 자리 잡았고 의료계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다. 박희연은 박씨 가문에서 ‘훔친’ 재산을 기반으로 제약 산업 전반에 걸쳐 투자했고, 현재는 전국에 체인을 둔 대형 약국과 사설 병원을 운영하며 자산을 수백 배로 불렸다. 그 결과, 상류층에서도 이름을 날리는 ‘성공한 인물’이 되었다. 이씨 가문은 어느새 의료계의 선두 자리를 차지했으며, 수십조 원대 자산을 보유한 재벌 서씨 가문과의 혼인을 앞두고 또 한 번의 사회적 도약을 꿈꾸었다. 세상에 과연 인과응보란 게 있긴 한 걸까? 정작 가장 뻔뻔하고 비열하며 잔인한 자들이 제일 잘 먹고 잘살다니.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이루나는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며칠 사이 벌어진 일들과 이씨 가문 사람들의 잔혹함과 비열함을 떠올리자 걷잡을 수 없는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