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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집에 돌아오자 마치 혼이 빠진 사람처럼 침대 위에 풀썩 쓰러졌다. 머리는 깨질 듯 아팠다. 이 지경이 된 이상 동물병원이 언제 정상으로 영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브랜드 이미지는 바닥까지 추락했고 직원들은 줄줄이 퇴사했으며 폐업 조치까지 당했다. 게다가 각종 소송과 손해배상 문제도 처리해야 했다. 심지어 이원호에게 두들겨 맞은 탓에 다치기까지 했다. 타박상은 물론 내장이 손상되어 며칠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도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았다. 이씨 가문이 저지른 짓은 단순한 폭력 따위로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세 사람의 목숨과 박씨 가문의 재산까지. 최대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예전엔 그저 짐승 같은 일가족과 인연을 끊고 각자의 길을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벼랑 끝에 몰린 지금, 오래된 원한과 새로운 분노가 뒤엉켜 어느 때보다 강한 복수심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현재 이씨 가문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이은서와 서이건의 정략결혼이다. 서씨 가문은 어떤 집안인가. 서진 제약은 업계를 통틀어 선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그룹이다. 직원 수만 해도 수만 명에 달했고, 핵심 사업인 의약품 연구 개발, 생산, 판매 외에도 의료기기, 부동산,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사업 영역을 확장해왔다. 브랜드 가치는 무려 몇십조가 넘는다. 서씨 가문처럼 유서 깊은 명문가와 혼인을 맺고 막강한 자본력을 지닌 업계 동료와 가족이 된다는 것이 박희연과 이성태 부부에게 얼마나 큰 기대였을지는 쉽게 짐작이 갔다. 그 집안에 가장 치명적인 복수를 하려면 서이건을 노리는 수밖에 없다. 순간 이루나는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 2주는 금방 지나갔다. 이루나의 몸은 거의 회복되었고, 정신 상태도 ‘만렙 부활’ 수준이었다. 그날 오전, 샤워하고 머리를 감은 뒤 화장하고 옷까지 갈아입으며 무려 2시간 넘게 정성껏 꾸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변신했다. 전신 거울 앞에 선 그녀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거울 속의 여자는 몸에 딱 붙는 블랙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풍만하고 탄탄한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우아한 목선, 잘록한 허리, 길고 눈부신 하얀 다리까지 그야말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얼굴마저 완벽했다. 또렷하고 강렬한 인상의 이목구비는 진한 화장을 하지 않아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특히 아련한 눈빛은 치명적인 매력 속에 연약함이 묻어나 보는 이의 심장을 떨리게 했다. 그녀는 거울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기울여 진주 귀걸이를 착용했다. 압도적인 미모를 감상하며 입가에 여유롭고도 의미심장한 냉소를 지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서랍에서 빨간색 포장의 콘돔 한 개를 꺼내 가방에 넣었다. 7cm가 넘는 뾰족한 하이힐을 신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차에 올라타 내비게이션에 ‘서진 제약 그룹 본사’ 주소를 입력한 다음 선글라스를 쓰고 액셀을 밟아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한 시간 후, 차량은 외곽의 한 고층 빌딩 앞에 멈추어 섰다. 이곳이 바로 서씨 가문의 비즈니스 요새, 그 본사 건물이다. 외관부터 웅장하고 위풍당당했다. 옥상에는 하늘 위 한옥과 유리 산책로까지 있어 현대적이며 제약회사의 하이테크한 감각이 물씬 풍겼다. 주차하고 간단한 출입 등록을 마친 뒤 본관으로 들어섰다. 대표이사 사무실이 위치한 층은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대부분 임원이나 개인 비서가 출입증을 찍고 안면 인식을 통해야만 출입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루나는 이미 철저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금단의 구역’인 10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서이건의 사무실 문 앞에 도착했다. 때마침 비서가 잠깐 자리를 비웠다. 이루나는 저벅저벅 걸어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꽉 닫혀 있던 문을 벌컥 열었다. 넓고 호화로운 내부에 들어서자 가죽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 서이건을 발견했다. 꽤 피곤했던 것인지, 그녀가 들어온 순간에도 바로 눈치채지 못했다. 이루나는 문을 잠그고 사뿐사뿐 다가갔다. 하이힐을 신었지만 고급 카펫 덕분에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녀가 책상 앞까지 다다랐을 무렵, 남자는 익숙한 향기라도 맡은 듯 눈을 번쩍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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