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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그녀의 노골적인 도발에도 서이건은 그 자리에서 폭발하지 않았다. 그가 어두운 얼굴을 한 채 돌아서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태준, 너 먼저 가. 단둘이 얘기할 게 있어.” “삼촌, 할 얘기 있으면 내 앞에서 해요. 루나는 지금 내 여자 친구예요. 우리 두 사람은...” “입 닥쳐.” 서태준의 입에서 여자 친구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서이건은 화가 치밀어 올랐고 그를 향해 호통쳤다. “지금 나한테 대드는 거야? 당장 나가.” 말을 마친 그는 거실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아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서태준은 그가 화난 이유를 잘 모르겠다. 쫓아가서 해명하려고 하는데 이루나가 서태준을 막아서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태준아, 넌 일단 나가 있어. 내가 남아서 잘 얘기해 볼게. 별일 아니야.” “안돼. 어떻게 널 여기 혼자 두고 나가.” 서태준은 이루나를 이곳에 두고 가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녀가 서이건을 상대하는 게 걱정되었다. “괜찮아. 서이건 씨는 곧 은서랑 결혼하잖아. 어찌 됐든 나한테 제부가 되는 건데. 앞으로는 다 한 가족이고 언젠가는 직면하게 될 일이야.” 이루나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서태준은 조금 전 서이건의 무서운 얼굴을 떠올렸다. 평소에 독단적이고 거침없는 삼촌의 모습에 그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단둘이 얘기해.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전화해.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삼촌이랑 나 사이가 좋아. 널 너무 곤란하게 하지는 않을 거야.” “응.” 잠시 후, 서태준이 차를 몰고 별장을 떠나는 것을 보고 이루나는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위층을 한 번 쳐다보고 곧장 위층으로 걸어갔다. 이내 2층 서이건의 침실 입구에 도착했고 이루나는 살짝 벌어진 방문을 확 밀었다. 남자는 안방의 베란다에 서서 두 손으로 난간을 짚고 그녀를 등진 채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주위에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루나는 서이의 뒤로 다가갔다. “단둘이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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