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엎드린 채 결박당한 이루나는 얼굴이 소파에 파묻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저항하려 했으나 남녀의 힘 차이가 워낙 컸기에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한다고 한들 역부족이었다.
화풀이인지, 복수인지, 처벌인지도 모를 난폭한 기세가 그녀를 집어삼켰다.
이 남자에게도 이런 변태적인 기질이 있을 줄이야.
이루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성과 의지를 뒤로한 채 그에게 몸을 맡겼다. 어느덧 당하기만 하다가 주도권을 쥐고 본능에 따라 짜릿한 순간을 온전히 즐기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평화가 찾아왔다.
그녀는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소파에 축 늘어졌다. 허리가 부서질 것 같았고, 말은커녕 생각조차 하기 싫은 나른한 상태였다.
반면, 서이건은 이미 바지를 추켜 입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서서 느긋하게 단추를 잠그고 있었다.
몸에 딱 맞는 회색 셔츠는 그녀가 움켜쥔 탓에 군데군데 구겨졌지만 늘씬한 허리 라인과 넓은 등, 단단한 가슴은 또렷이 드러났다.
순간 이루나는 모든 갈등을 잊은 듯 애틋한 눈빛으로 우뚝 솟은 뒷모습을 바라보며 혼란스러운 감정에 사로잡혔다.
옷매무새를 다듬고 돌아선 서이건은 마침 이루나의 몽롱한 시선과 마주쳤다. 하지만 찰나의 눈 맞춤 후 여느 때처럼 냉철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오늘 할 말은 다 했으니까 앞으로는 절대 눈에 띄는 일이 없도록 해.”
한 마디만 남기고 휴대폰과 차 키를 챙기더니 현관으로 걸어갔다.
쌀쌀맞은 태도에 이미 익숙해진 이루나는 딱히 동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을 열려던 찰나, 귀신에 홀린 듯 그를 불러 세웠다.
“돈은 주고 가야지?”
서이건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이루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마치 거래하듯 사무적인 미소를 지었다.
“지난달 건은 돈 받고 끝냈으니까 오늘 밤은 따로 계산해야지 않겠어?”
서이건은 기가 막힌 나머지 눈을 감았다.
잠깐의 고민 끝에 휴대폰을 꺼내 송금하려고 그녀의 카톡을 열었다.
“다시 추가해.”
낮고 무뚝뚝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제야 이루나는 지난번에 헤어질 때 그를 지웠다는 걸 떠올리고는 휴대폰을 꺼내 차단 해제했다.
잠시 후 송금 알림이 떴다. 하지만 금액을 확인한 순간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10만 원.”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모욕적인 말을 뱉었다.
“지금 네 몸값이 딱 그 정도야.”
이루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
이내 이를 악물고 냉소를 지으며 절대 물러서지 않을 기세로 말했다.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겠네. 여기서 성매매 같은 불법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고. 같이 유치장에서 썩는 것도 나쁘지 않지. 어차피 난 남는 게 시간이라. 물론 이건 씨는 약혼녀랑 하려던 세기의 결혼식을 좀 미뤄야 하겠는데?”
그러고 나서 능청스럽게 통화 화면에 ‘112’를 입력했다.
서이건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말문이 막힌 듯했다.
“돈이 그렇게 좋아?”
그가 물었다.
“그렇다고 이건 씨를 좋아할 순 없잖아?”
이루나가 되받아쳤다.
남자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짜증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이 다시 치밀어 올랐다.
더는 그녀와 실랑이를 벌이기 싫어 다시 휴대폰을 꺼내 재빨리 은행 앱을 열었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20억 원을 송금했다.
“앞으로 내 눈에 띄지 마. 이 돈으로 우리 관계는 무덤까지 안고 가.”
말을 마치고 찬바람을 쌩하니 일으키며 걸어가 문을 쾅 닫고 시야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