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0장

주경민이 지시했던 일을 떠올리자 추영준은 잠시 강유리를 바라보며 눈빛을 살짝 떨었다. 하지만 강유리는 그의 미묘한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방 안은 아무도 말하지 않아 정적이 흘렀고 그녀는 점점 더 어색해졌다. 결국 입술을 꾹 깨물며 서러운 감정을 눌렀지만 마음속 불안은 한층 더 짙어졌다. 그녀의 얼굴에는 스치듯 어둡고 실망스러운 빛이 어렸다. 예전 같았다면 이렇게 넘어져 다친 모습을 본 주경민이 분명 안쓰러워했을 것이다. 비록 부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다 해도 먼저 추영준에게 그녀를 일으켜 세우라고 지시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녀가 이렇게 오랫동안 바닥에 엎어져 있는데도 주경민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마치 그녀가 다친 걸 보지 못한 듯 무심하기만 했다. 강유리는 생각할수록 서러운 마음이 치밀어 곁에서 멀뚱히 서 있는 추영준마저 괜히 못마땅해졌다. ‘눈이 먼 거야? 내가 이렇게 다쳤는데 못 본 척 서 있기만 하다니. 날 일으켜 세워 줄 생각은 하지도 않고 나무토막처럼 서 있기만 하잖아.’ 그녀는 이를 악물고 속이 불쾌감으로 가득 차오르는 걸 억눌렀다. 하지만 방 안의 공기가 너무 묘하게 흘러 결국 입 밖으로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속으로 삼켰다. 말하지 않은 건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경민의 눈빛은 강유리를 움츠러들게 했다. 차갑고 서늘한 그 시선은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 공포와 불안을 심어놓았다. 주경민이 이렇게 자신을 바라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순간, 4년 전 처음 주경민을 마주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 그는 계단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표정 없는 얼굴로 모녀를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을 강유리는 평생 잊지 못했다. 그건 마치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바라보면 눈이 더러워질 것 같다는 듯 차갑고 냉담한 시선이었다. 그때 느꼈던 서늘한 공포와 수치심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를 꽁꽁 얼어붙게 했다. 주경민이 자신과 함께했던 두 달은 마치 꿈처럼 황홀했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