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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그 순간, 장은주도 서예은을 수영장에서 끌어올렸다. 서예은은 온몸이 흠뻑 젖은 상태였고, 장은주는 서둘러 자기 정장 재킷을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었다. 다행히도 장은주는 오늘 업무 회의차 정장을 입고 나온 터라, 안에 입은 셔츠만으로도 무방했다. 게다가 이 정장은 맞춤 제작된 것으로 디자인이 독특해 만찬에 참석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주현진은 서지안을 안은 채 눈살을 찌푸리고 서예은을 노려보며 나무라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예은, 어떻게 서지안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어?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어쩔 뻔했어?” 서예은은 그 말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차가운 시선으로 주현진을 응시하며 비웃듯 말했다. “주현진, 눈이 먼 거야? 분명히 서지안이 나를 끌어내렸는데, 이제 와서 내 탓이라고?”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많은 이들이 서예은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마 서예은이 질투에 눈이 멀어 이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서지안은 그 광경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다시 울상이 되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빠, 언니를 탓하지 마. 다 내가 잘못한 거야. 언니를 화나게 할 짓을 하지 말아야 했는데...” 결국 이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서예은을 망신 주려는 서지안의 계획이었다. 장은주는 이를 악물고 서지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욕을 퍼부었다. “서지안! 불쌍한 척하지 말고 꺼져! 네가 일부러 서예은을 물에 빠뜨린 거 전부 다 봤어! 그래 놓고 지금 예은이한테 뒤집어씌워? 진짜 뻔뻔하네.” 서지안은 장은주의 기세에 눌려 주현진 뒤로 움츠러들더니 그의 소매를 꽉 움켜쥐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내가 그런 게 아니라고. 어떻게 나를 이렇게 몰아세울 수 있어?” 주현진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는 서지안을 감싸며 장은주에게 냉담하게 말했다. “장은주 씨, 말조심하시죠. 지안이가 놀라기라도 하면 책임질 거예요?” “퉤! 개보다도 못한 놈들이 놀고 있네!” 장은주는 침을 내뱉더니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욕을 퍼부었다. 주현진이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서지안이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오빠, 그만해. 나 괜찮아. 그런데 언니가 정말 나를 싫어하는 것 같...” 서지안은 눈가에 눈물을 글썽이며 억척스럽게 연기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예은은 옆에 있던 레드 와인 잔을 집어 들더니 서지안의 얼굴을 향해 확 쏟아부었다. 갑자기 느껴지는 차가운 느낌에 서지안은 말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서예은을 바라보았다. 진한 술 냄새가 그녀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망할 서예은, 이 미친년이! 네가 감히!’ 서예은의 눈빛에는 매서운 칼날이 번뜩이는 듯했고, 목소리에는 냉소가 서려 있었다. “하지 않은 일을 자꾸 했다고 하면 내가 억울하잖아. 술은 내가 뿌린 게 맞으니까 이제 연기할 필요 없겠네.” 말을 마친 서예은은 장은주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 사람들의 시선이 서지안에게로 집중되었고, 그 눈빛 속엔 경멸이 서려 있었다. 차분한 서예은과 어색한 연기를 하고 있는 서지안. 한눈에 봐도 누가 진짜 가식적인지 다들 알 수 있었다. “오빠...” 서지안은 떨리는 목소리로 주현진을 바라보았다. “나 추워. 머리도 어지럽고.” 서지안은 서예은이 정말 미워서 죽을 지경이였다. ‘서예은, 너만 아니었다면 내가 이렇게 망신을 당할 일이 없었을 텐데!’ 사라지는 서예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주현진은 마음속에서 이유 모를 짜증이 밀려왔다. 그는 서지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병원에 가보자.” 서지안은 연약한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 서예은은 몸은 젖어있어 추웠지만 마음은 의외로 고요했다. 그녀는 연회장을 나서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에 눌려 있던 무언가가 조금은 사라진 것 같았다. 고개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니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서예은.” 갑자기 등 뒤에서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칫하던 서예은이 고개를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 키가 큰 남자가 서 있었다. 깔끔하게 피팅된 검은 정장을 입은 그의 얼굴은 차갑게 얼어있었고, 깊은 눈빛은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할 듯 날카로웠다. 박시우였다. 이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그를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서예은은 자기도 모르게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박시우 씨.” 그녀는 최대한 평온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옆에 있던 장은주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라고? 이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박시우라고? 박씨 가문의 그 도련님? 그런데 예은이를 알고 있다고? 말도 안 돼!’ 장은주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도 전에 박시우가 다가왔다. 그는 서예은의 손을 잡으며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왜 이렇게 다 젖었어?” 서예은은 어차피 그가 조사하면 다 알게 될 테니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게... 사고가 좀 있었어요.” 장은주가 옆에서 투덜댔다. “사고는 무슨! 서지안이 일부러 널 끌어내린 거잖아!” 박시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감히 내 아내를 건드려? 죽고 싶어 안달이 났나 보네.’ 서예은은 아직 박시우와의 관계를 사람들한테 알리기 싫었다. “괜찮아요. 이미 복수도 했어요.” 그리고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여긴 내 친구 장은주예요. 은주야, 이쪽은 박시우 씨.” “장은주 씨, 반가워요.” 박시우의 정중한 인사에도 장은주는 너무 놀라 눈만 껌뻑이며 그를 바라봤다. 눈앞의 남자는 정말로 연예인 뺨치는 외모에 우아한 품격까지 갖춘 완벽한 사람이었다. ‘세상에... 서예은은 언제 이런 남자를 만난 거지? 나중에 제대로 캐물어 봐야겠다.' “박시우 씨, 영광이네요.” 장은주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박시우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서예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집으로 가자.” 그의 말에 서예은은 당황해하며 물었다. “만찬에 참석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박시우는 서예은의 젖은 드레스를 내려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안 가. 빨리 집에 가서 옷이나 갈아입자.” 서예은은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이만 가요.”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멍하니 듣고 있던 장은주는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자, 참지 못하고 서예은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서예은, 두 사람 대체 무슨 사이야? 왜 이렇게 친근해 보이는 건데?” 서예은이 얼굴을 붉히며 답변을 망설이는 사이, 박시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장은주 씨, 예은이는 제 아내예요.” “뭐? 아내?” 비명을 지를 뻔한 장은주는 급하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더니 마치 세상을 뒤흔드는 뉴스를 들은 듯 눈이 동그래져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서예은도 박시우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들의 관계를 공개할 줄은 몰랐는지 얼굴에 홍조가 번졌다. 잠시 뒤, 드디어 충격에서 헤어 나온 장은주는 서예은의 어깨를 탁 치며 약간 놀리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예은아, 너 대단하다? 나한테까지 이걸 숨겨?” “미안. 잠시 비밀이야. 회사의 일도 아직 처리하지 못했잖아. 혹시라도 일이 꼬일까 봐 그래.” 서예은이 미안한 듯 말하자, 장은주는 즉시 입술에 지퍼를 채우는 제스처를 취했다. “장은주 씨도 함께 가시죠. 집까지 모셔다드릴게요.” 박시우는 서예은과 장은주의 관계가 돈독하다는 걸 알아챈 듯했다. “아니에요. 저는 제 차가 따로 있어요.” 장은주는 급히 사양했다. 서예은이 박시우와 함께 연회장을 떠나자, 장은주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진짜 천생연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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