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배승호는 책상 위에 놓인 검은 화면의 휴대폰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고 금테 안경 뒤의 눈빛은 어둡고도 알 수 없는 심연 같았다.
그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목젖이 크게 움직였고 가슴 위에 펜으로 그어진 상처는 아물어 딱지가 앉아 있었다.
벌써 사흘째 유채하는 한 번의 답도 주지 않았다.
“배 대표님, 이사회 쪽에서...”
조심스레 조용히 부르는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뤄.”
말을 끊으며 배승호는 손끝으로 탁자를 쳤다.
“오늘 유채하의 일정을 전부 확인해.”
비서는 입술을 달싹이며 주저했다.
“하지만 친환경 에너지 프로젝트의 계약이...”
“미루라고 했잖아.”
배승호가 고개를 들자 안경 렌즈 밖으로 차갑게 번뜩이는 빛이 반사되었다.
“세 번 말해야 알아듣겠어?”
등골이 서늘해진 비서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퇴장했다.
통유리창 앞에 서서 배승호는 도시 전경을 내려보다 불현듯 떠오른 건 유채하가 펜으로 자신의 단추를 하나씩 풀어내던 마치 자신이 그녀의 한낱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듯한 그 순간의 눈빛이었다.
가슴이 묘하게 조여들자 그는 셔츠 단추를 두 개나 풀어 젖혔고 그제야 숨이 트였다.
이익 없는 장사는 절대 하지 않는 배승호였지만 이번에는 벌써 지분 양도 계약서까지 준비해 두었다.
배승호는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을 비웃었다.
“미쳤군.”
라움 쇼핑몰에서 유채하의 손끝이 고급 드레스들을 스쳐 지나가자 값비싼 원단이 물결처럼 흘러내렸다.
강이현은 무려 일곱 개의 쇼핑백을 들고 두 걸음 뒤에서 묵묵히 서 있었다.
“이거.”
짙은 붉은색의 머메이드 드레스를 유채하가 가리켰고 강이현은 즉시 앞으로 나섰다.
“입어 보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려던 순간 그녀의 눈가에 익숙한 그림자가 스쳤다.
유채하의 붉은 입술이 은근히 휘어 올랐고 그녀는 일부러 강이현의 귀로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뒤 지퍼 좀 올려 줄래?”
강이현의 귓불이 순간적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주인님.”
“유채하, 참 여유롭네.”
루이비통 매장 쪽에서 배승호가 걸어나왔고 손에는 벨벳 케이스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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