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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긴급 임무] [강이현의 어머니에게 신장 이식 기회가 생겼습니다, 다만 24시간 내에 선급금 6,000만 원을 준비하지 못하면 기회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유채하님, 즉시 모든 비용을 지급하고 따듯한 위로를 건네며 안아주세요. 그리고 말해주세요. 내가 있으니 두려워할 것 없다고요. 호감도를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유채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느긋하게 복도 한편에 기대서서 담배를 피웠다. 경멸에 찬 눈빛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그녀의 시선이 원무과로 향했다. 시스템에 의해 억지로 끌려 나와 짜증이 났던 유채하는 눈앞에 펼쳐진 좋은 구경으로 조금 가셔졌다. 창구에서 간호사가 기계적인 말투로 말했다. “강이현 님, 잔액이 부족하다고 나오는데요?” “먼저... 수술할 수는 없을까요?” 강이현의 목소리는 갈라질 대로 갈라져 있었고 힘이 들어간 손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하얬다. “사흘 안에 반드시...” “저희도 규정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비용을 처리하지 않으면 수술할 수 없어요.” 간호사가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러자 테이블에 올려놓은 강이현의 손이 점점 더 하얘졌다. “돈이 없으면 뒤로 물러나요.” 줄 서 있던 다른 사람들이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임소연이 눈시울을 붉히며 해진 지갑을 꺼내 꼬깃꼬깃한 용돈을 꺼냈지만 비용을 지급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현아, 걱정하지 마. 모자라면 내 학비도...” 임소연이 손을 내밀어 강이현의 땀을 닦아주려는데 후자가 티 나지 않게 몸을 비키며 그 손길을 피했다. “허.” 경멸에 찬 웃음소리가 정체된 분위기를 깼다. 눈꺼풀을 든 강이현의 눈에 빛과 그림자가 만난 곳에 비스듬히 기대선 채 담배를 물고 있는 유채하가 들어왔다. 그 모습은 마치 폐허에 자라난 양귀비처럼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강이현의 눈동자가 심하게 요동쳤다. 무거운 걸음으로 유채하에게 다가간 그는 세 걸음 정도 남겨두고 침을 꿀꺽 삼키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채하 씨...” 힘이 잔뜩 들어간 강이현의 목은 핏줄이 선명하게 보였다. “6,000만 원.” 강이현이 눈을 질끈 감더니 다시 입을 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돈이... 돈이 필요합니다.” 시스템도 흥분하기 시작했다. [유채하 님. 절호의 기회입니다. 어서 수락하세요. 그리고 안아주세요. 호감도가 급상승할 것입니다] 유채하가 담뱃재를 툭툭 털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어머. 너 지금 부탁하는 거 맞지? 그러면 뭐라고 불러야 하지?” 하이힐이 바닥에 부딪히며 또각하는 소리를 냈다. 유채하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하얗게 질린 강이현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후하고 뿜어냈다. “강이현. 뭔가를 부탁하려면 자세부터 바르게 해야지.” 눈이 휘둥그레진 임소연이 옷자락을 꽉 움켜잡았다. “유... 유채하?” 임소연은 아무렇지 않게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이 소녀가 평소 부드럽기만 하던 그 유채하가 맞는지 의심했다. “현아, 우리 방법을 생각해보자... 일단 진정하고...” 임소연이 떠보듯 강이현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한마디 덧붙였다. “아주머니가 한 말 잊었어? 가진 게 없어도 자존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삑. 병원 알림판에 빨간 경고 글이 올라왔다. [신장 이식 대상자 강정숙 님, 강정숙 님의 가족분은 24시간 이내에 수술 비용을 지급하세요. 어길 시 다른 환자에게로 넘어가게 됩니다.] 간호사가 달려와 이식 포기 각서를 내밀었다. “강이현 님, 뒤에 3명의 환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강이현이 눈꺼풀을 축 늘어트리고는 영수증을 꽉 움켜쥐었다. 그때 시스템이 요란하게 울렸다. [시스템 경고: 강이현의 정서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정서를 바로잡을 수 있게 지금 바로 개입하세요] 강이현이 눈꺼풀을 들고 유채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화면에서 나온 빨간 불빛이 눈을 아프게 찔렀지만 손에 잡은 비용 청구서는 꽉 움켜쥔 채 놓을 줄을 몰랐다. 담뱃재를 털어낸 유채하가 강이현의 시선을 마주했다. 순간 강이현은 속에서 뭔가 툭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순간 모든 떨림과 발버둥과 수치가 한꺼번에 빠져나갔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놀라울 정도로 마음이 차분해졌다. “아... 알겠어요.” 사람들이 숨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강이현이 천천히 무릎을 굽히자 임소연이 바로 뛰어와서 잡아당겼다. “현아, 미쳤어? 일어나.” 하지만 그런 그녀를 맞이한 건 심연과도 같은 눈동자였다. 얼핏 보면 그 심연은 굴욕으로 들끓었지만 자세히 보면 물에 빠진 사람이 부목을 잡은 것처럼 평온해 보였다. “6,000만 원 꼭 갚을게요.” 강이현이 머리를 차가운 바닥에 박으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님, 제발 어머니를 구해주세요.” 이번에는 강이현도 진심으로 이 호칭을 불렀다. 이에 유채하가 움직였다. 찰싹. 블랙카드가 얼굴에 닿으며 나는 소리에 강이현이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6,000만 원은 술 한 병 사기도 어렵지.” 유채하가 하이힐 끝으로 강이현의 턱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고개를 숙이자 긴 머리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고 그 위로 보이는 정교한 입술은 주문을 외우듯 다시 열렸다. “주워. 그리고 기억해.” “네가 목숨 걸고 지켜온 자존심, 이제 나한테 있다는 거.” 유채하가 하이힐로 강이현의 손등을 밟고 서서히 힘을 줬다. “찍소리도 하지 말라는 소리야.” [지직. 지지직.] 시스템의 전자음이 감지되었다. [이럴 수가. 호감도 +10? 유채하 님, 도대체 무엇을 하신 겁니까] 유채하는 붕괴 일보 직전인 시스템의 절규를 무시하고 강이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떨리는 속눈썹과 빨개진 손등,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본 순간 유채하의 웃음은 점점 더 악랄해졌고 발에도 힘이 들어갔다. 시스템이 요란하게 울렸다. [강이현이 즐기고 있다니, 이러다 데이터베이스가 폭발하고 말 것입니다] 유채하가 하얗게 질린 임소연의 얼굴을 보고 비아냥댔다. “오늘부터 유씨 가문에서 어머니의 치료를 책임질 거야. 하지만 이쪽은...” 유채하가 빨간 입술을 강이현의 귓가에 바짝 가져다 댔다. “연락하다가 나한테 걸리면 의료 기기들 하나씩 뺄 거니까 알아서 해.” 임소연이 강이현의 옷자락을 잡고 유채하를 노려봤다. “네가 뭔데? 나는 현이랑 소꿉친구라고.” “소연아.” 강이현이 팔을 빼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동안 고마웠어.” “이제 더는 찾아오지 마. 어머니께는 내가 설명할게.” 임소연은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유채하가 입꼬리를 올리며 강이현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멍멍아. 착하지.” 강이현이 온몸을 파르르 떨더니 목덜미가 빨개지기 시작했다. 시스템은 완전히 맛이 간 상태였다. AI로서는 왜 공략하는 목표가 자존심을 짓밟혔음에도 불구하고 소속감을 찾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마이바흐가 소리 없이 가든으로 들어갔다. 차 문이 열리자 기다리던 집사가 우산을 씌워줬다. “아가씨. 배승호 도련님 오셨습니다. 거실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시스템이 머릿속에서 울부짖었다. [어머. 곧 아수라장이 펼쳐질 예정입니다. 유채하 님, 어서 정해진 캐릭터로 전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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