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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화

강희진의 몸집은 원래 자그마하였고 온전한 한 마리의 큰 사슴이 그녀의 어깨에 올라앉으니 반쯤은 그대로 가려져 버렸다. 이 길이 얼마를 걸었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엔 두려움에 휩싸였던 그녀였으나 이윽고 모든 감정이 마비되어 버렸다. 진창에 젖은 피투성이의 몰골로 진영에 돌아서자 그녀를 본 이들은 일제히 놀라움에 숨을 삼켰다. 강희진은 말없이 어깨 위 사슴을 하인들에게 맡긴 채 수군거림과 놀람, 혹은 혐오가 섞인 시선들을 뚫고 조용히 자신의 장막으로 돌아갔다. “아가씨, 어찌 된 일입니까?” 초월이 다급히 다가오며 묻는다. 피범벅이 된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친 줄로 여긴 것이다. “아무 일 아니야.” 강희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물 좀 데워주렴.” 온몸에 끈적한 피가 들러붙어 옷이며 피부며 무엇 하나 편한 데가 없었다. 초월은 즉시 움직여 이내 따뜻한 물과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 왔다. 따뜻한 물이 피부를 타고 흐르자 그제야 강희진은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모두 물러가.”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욕조 가장자리에 몸을 기댔다. 초월은 그 눈빛에서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를 읽었으나 끝내 묻지 않고 장막 안에 있던 궁인들을 조용히 물렸다. 주변이 곧 조용해졌다. 강희진의 머릿속엔 아까 죽어가던 그 사슴의 눈빛이 계속 떠올랐다. 고통과 몸부림, 간절한 살려달라는 눈빛, 그건 마치 전생에 강원주에게 버려져 우물가에 던져질 당시의 그녀와 똑같았다. 그때 그녀는 생각했다. 자신이 반드시 죽어야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강원주가 그와 인연을 맺은 것이지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강씨 가문이 어찌 되든, 그것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그저 어머니와 함께 멀리 떠나 조용히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허나 그 작디작은 바람조차 강씨 가문은 허락하지 않았다. 선우진이 사슴의 발목을 꿰뚫은 한 발. 그건 마치 높은 곳에 선 자가 개미를 짓밟듯 하찮게, 무심하게 내려진 한 방이었다. 방금 전의 일들이 그녀의 과거와 겹쳐지며 강희진은 끝내 몸을 떨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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