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화
말을 하며 선우진은 말등에 올랐다.
기골이 장대한 데다 그가 탄 말 또한 평안보다 한결 크고 늠름하여 강희진은 고개를 치켜들어야 겨우 그의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소첩, 감히 폐하의 깊은 뜻을 헤아릴 엄두가 나지 않사옵니다.”
강희진이 잠시 머뭇거리다 답하였다.
설마, 겨우 저 구운 토끼고기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선우진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녀 또한 그와 함께 사흘을 내리 토끼고기로 끼니를 때우다 보니, 이젠 토끼만 봐도 속이 울렁거려 견디기 힘든 지경이었다.
선우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앞발을 들고 몇 걸음 나아가더니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그는 활시위를 당겨 강희진을 겨누었다.
“폐하!”
강희진이 깜짝 놀라 외쳤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살 한 자루가 그녀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곧이어 들려온 것은 한 마리 큰 사슴의 고통스런 울음소리였고 멀리서 그 사슴이 땅에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강희진은 아직도 상황을 다 파악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있었고 그사이 선우진은 그녀 곁을 지나 사슴이 쓰러진 곳으로 향하였다.
“짐도 안다. 내기를 함에 있어 승패는 있기 마련이지.”
그는 태연한 말투로 나른하게 말을 이었다.
강희진이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그를 뒤쫓았다.
“헌데, 이번만은 이기고 싶지 않구나.”
선우진이 그녀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강희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물었다.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사옵니까?”
“짐은 이미 너무 많이 이겼거든. 때로는 남에게 기회를 양보해야 보는 이들도 재미가 나지 않겠느냐.”
선우진의 입가엔 장난기 어린 웃음이 걸렸다. 햇살을 받은 그의 눈은 반달처럼 휘어졌고 그 눈매엔 천진한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강희진은 속으로 미묘히 찌푸리며 시선을 돌려 쓰러져 있는 사슴을 바라보았다.
그녀라고 어찌 눈치채지 못하겠는가. 지금 선우진의 말은 단순한 시합 이야기가 아님을.
그가 말하는 건 바로 조정의 권력 다툼이었다. 후궁의 몸으로 정사에 관여할 수 없는 바, 그녀는 아예 모른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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