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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34화

구연은 잠시 생각이 필요한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못 할 것도 없죠. 하지만 회사의 일을 끝마치고 나서야 가능할 것 같네요.” 심명은 다정하나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기다릴게요.” 그러자 구연은 갑자기 웃음을 거두고 곧은 자세를 잡더니 펜을 꺼내 서류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중요한 내용은 없어요. 단순한 절차일 뿐이니, 심명 씨는 그냥 사인만 해주시죠.” 심명은 이번에는 미련 없이 사인했다. “협조해 주셔서 고마워요.” 구연은 서류를 챙겨 일어나더니, 더 이상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고 뒤돌아 나갔다. 심명은 다시 주스를 마시며 속으로 생각했다. 구연이 자신이 기대한 만큼 영리하지는 않은 듯했다. 예를 들어, 심명은 자신을 보면서도 왜 혼자 이곳에 있는지 묻는 걸 깜빡한 것이었다. 구연은 회사로 돌아와 구택이 회의를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서류를 들고 들어가 보고했다. 구택은 짙은 색 정장을 입고 넓은 책상 뒤에 앉아, 한 손으로는 서류를 검토하면서 다른 한쪽 귀로 보고를 듣고 있었다. 업무 보고가 끝나자, 구연은 잔잔히 웃으며 물었다. “사장님, 요즘 사모님을 회사에 모시고 오시지 않네요?” 구택은 고개를 숙인 채 사인하며 무심하게 말했다. “아내는 요즘 도씨 저택에 있거든요.” 이에 구연은 마치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오늘 호원도로 쪽 카페에서 사모님을 본 것 같은데, 아마 제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겠네요.” 구택의 펜이 순간 멈추더니 시선을 들어 올렸다. “호원도로요?” 구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가 제대로 확인한 건 아니에요. 사모님이 아니었을 거예요.” 구택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제 나가서 일 보세요.” “네.” 구연은 사장실을 나와 자리로 돌아와 서류를 내려놓고, 물컵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문을 닫은 뒤, 구연은 주머니에서 작은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고 스위치를 켰다. 곧 귓속에 구택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흘러나왔다. “소희 오늘 어디에 갔는지 알아봐.” 약 5분쯤 지나자 전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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