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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03화

석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명빈 씨 말이 맞아요. 부모라는 관계가 있다고 해도 결국 각자 자기 인생이 있는 거니까.” “선택 앞에서는 자기 이익을 우선하는 게 당연한 거고. 굳이 원망할 필요도 없어요.” 명빈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닌데요?” 하지만 석유는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돌려 물었다. “술 마실래요?” 명빈은 입꼬리를 올렸다. “또 취해서 나한테 치근덕거리려고요?” 석유 얼굴이 차갑게 굳더니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잠시 뒤, 석유는 칵테일 두 병을 들고 돌아왔다. 연한 푸른빛 술은 예쁜 유리병과 어우러져 밤 조명 아래서 반짝반짝 빛났다. 사람 마음을 홀리는 색이라 명빈은 손을 뻗어 칵테일을 가져갔다. 웃음기 어린 얼굴로 또 한 번 석유의 신경을 은근슬쩍 긁었다. “술 약하면 그냥 마시지 말고 차 마셔요. 차도 충분히 마음 달래주거든요.” 석유는 술이 약했지만 이런 화려한 색 술을 유난히 좋아했다. 칵테일은 석유에게 희유 같은 존재였다. 손대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끌리는 그런 존재, 그래서 늘 참고 또 참았다. 석유는 다시 술병을 빼앗아 왔다. “조금만 마실 거예요. 절대 안 취해요.” 취하더라도 여긴 자기 집이었다. “좋아요. 내가 같이 마셔줄게요. 도철민 그 개자식 제대로 벌받은 기념으로.” 명빈은 한발 물러서며 병뚜껑을 가볍게 따고는 물었다. “짠할까요?” 그 요청에 석유도 병을 들어 올렸다. 병끼리 부딪치며 맑고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두 사람은 잔도 쓰지 않고, 그저 한 사람당 한 병씩 들고 그대로 마시는 바람에 분위기까지 자유롭고 시원시원해 보였다. 씁쓸하면서도 짙은 과일 향이 입안에서 터졌고, 자극적인 감각이 목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다. 석유는 고개를 뒤로 젖혀 의자에 기대앉자 속이 뻥 뚫리는 듯 통쾌했다. 몇 모금 마시지도 않았는데 석유 눈가는 이미 붉어지기 시작했다. 석유는 명빈을 바라보며 맑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명빈 씨는 사실 꽤 괜찮은 사람이에요.” 명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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