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03화
경준이 걸어와 벼랑 아래를 내려다보자 준수한 얼굴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실, 명 사장님은 너한테 정말 잘해 줬어.”
경준은 유청이 자신에게 보복할 거라 생각했지 그 대상이 명경일 줄은 몰랐다.
어쩌면 자신이 너무 약해서 유청의 눈에 담을 가치조차 없었는지도 몰랐다.
명경은 선량한 사람이 아니었다.
예전에 명경을 얼마나 미워했는지를 떠올리면 지금은 속이 후련해야 마땅했다.
꼴좋다고 욕이라도 해야 했지만 어째서인지 마음이 묵직했다.
마치 짙은 연기에 막힌 것처럼 흩어질 출구도 찾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윽고 경준이 무거운 눈으로 유청을 바라봤다.
“네가 이 방법을 떠올린 건, 결국 그 사람이 너를 구하러 올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잖아.”
“너는 그 사람을 못 믿었을지 몰라도, 결국 이용한 건 그 사람이 너를 아끼는 마음이었어!”
그 말에 유청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달려오던 그 순간이 떠오르자 통증이 밀려왔다.
그러나 유청은 금세 냉정을 되찾았다.
되짚지 않았고 자신에게 후회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곧 유청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사이는 이걸로 끝이야. 네 도박 빚은 내가 전부 갚아 줬으니까 앞으로 도박은 하지 마.”
“명경 씨 부하들이 순순히 물러나진 않을 거야. 당분간 외국에 나가서 피해 있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감당할게.”
말을 마친 유청은 노을과 흩어진 구름을 한 번 바라보고는 몸을 돌려 떠났다.
...
차를 몰고 산에서 내려온 유청은 민씨 저택으로도, 명경의 별장으로도 가지 않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 수지원으로 향했다.
아주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온 방 안이 썰렁했다.
방 안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마당의 불빛만이 통창을 넘어 들어와, 달그림자처럼 피아노 위에, 소파 위에 고요히 깔렸다.
어른거리는 그림자 속에서 유청은 명경이 훤칠한 몸이 소파에 반쯤 기대어, 편안한 자세로 자신의 연주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유청은 문가에 선 채 안으로 더 들어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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