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6장

서정희는 공항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었다. 두꺼운 모자를 쓰고 마스크까지 착용해 누구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염정훈이 돌아왔단 소식을 전해 듣고 그를 데리러 온 차들이 길게 늘어섰다. 아직 공항을 나서지도 않았는데 염정훈은 벌써 서정희와 헤어지기 아쉬웠다. “정희야.” 서정희가 팔짱을 끼고 둘 사이에 있었던 약속을 상기시켜주었다. “염정훈. 우리 약속했잖아. 벌써부터 약속 어기려고?” “아니. 그저 너와 떨어지기 아쉬워서.” “아직 완전히 안전해진 건 아니니까 오히려 내가 옆에 있으면 더 위험해져. 내 존재를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않아?” 지금의 서정희는 그때보다 확실히 차분해졌다. 염정훈도 그녀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아쉬웠다. “알아. 아는데…” 서정희가 마스크를 벗고 까치발을 들어 염정훈에게 키스했다. 염정훈도 제 발로 굴러들어온 기회를 잡아 그녀의 허리를 안아 깊게 입을 맞추었다. 어렵게 되찾은 만큼 염정훈은 또다시 서정희를 잃어버릴까 두려웠다. “염정훈. 우리 사이에 아직 염화진이 남아있다는 것 알고 있지? 만약 그때와 같은 일이 또다시 생겨서 나랑 네 동생이 동시에 위험에 빠진다면 넌 누굴 먼저 구할 거야?” “난…” 서정희는 검지로 그의 입술을 막았다. “결혼한 사이가 아니어서 제약이 없는 거야. 기대가 없으니 실망하고 슬퍼할 일도 없고. 네가 날 선택하지 않아도 난 슬퍼하지 않을 거야. 정훈아, 이렇게 지내는 게 우리가 가장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이야.” “정희야, 그렇지 않아.” “그럼 네 혈육을 버릴 수 있어?” 염정훈이 대답이 없자 서정희가 입을 열었다. “넌 못해. 염화진이 무슨 짓을 하든 네 유일한 동생이라서 넌 걔를 내버려두지 못해. 그래서 네가 힘든 선택을 하지 않게, 나도 더 슬프지 않게 그냥 이렇게 지내자. 이 세상 어딘가에서 서로 인생 잘 살면서 가끔 만나자고.” 염정훈이 다시 서정희의 입술을 머금었다. 서정희도 밀어내지 않고 격정적으로 몰아붙이는 염정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결국 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