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0장

“사모님.” 명훈이 잔뜩 주눅 들어 말한다. “제가 못 붙잡는게 아니잖아요. 그 분 눈엔 한 사람 밖에 안 보이는걸 어떡해요?” 서정희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 시절, 자신이 염정훈을 좋아했을때도 다른 이들의 구애 따윈 눈길조차 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젠 얼굴도 기억이 안 날 정도다. “포기하지 마, 와이프는 어떻게든 찾을수 있게 돼있어.” “싫어요.” “감정도 없느니라고.” 서정희가 이마를 탁 짚는다. 하나같이 고집불통들이다. “사모님, 비 올것 같으니 밤엔 외출 마세요. 정원에서 자칫 미끄러지실까 그래요.” “그래.” 서정희는 계속해서 국을 마신다. 뱃속의 아이들은 아직도 힘이 넘치는것 같으니 방 안에서 몇 바퀴 거닐다가 잠에 들어야겠다. 하늘은 구멍이라도 뚫린듯 밤새 비를 쏟아부었다. 번개까지 말썽인 탓에 서정희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야만 했다. 이튿날까지도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서정희는 할 수 없이 일어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희야, 나 왔어.” 방 문이 열리기도 전에 벌써부터 차안심의 목청 좋은 소리가 울린다. 그녀는 손에 간식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는 서정희의 손에 구겨넣어줬다. “너 부침개 먹고싶다고 했지? 내가 특별히 사왔어.” “안 먹은지 오래네. 이 맛이 그리웠거든.” 서정희는 부침개를 먹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 선배랑은 어떻게 돼 가?” 차안심이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어젯밤에 고백 받았어. 이건 선배가 선물해준 팔찌, 해외에서 특별히 날 위해 수작업으로 제작해준거래, 여긴 내가 쥐띠라서 쥐 그림도 박혀있고. 값어치는 안 나가지만 정성이 보이더라, 귀엽지?” 팔찌를 연신 흔들어대는 차안심의 모습은 사랑에 푹 빠져 콩깍지가 낀 소녀였다. “팔찌는 받아도 되는데 마음은 다 보여주면 안 돼. 전에 해줬던 말 잘 기억하고.” “걱정 마 정희야. 다 기억하고 있어. 집안 사정도 다 아는데 그 사람이 무슨 의도가 있겠어? 진심으로 잘해주는 거지.” 차안심은 그녀의 곁에 앉아 한참을 그의 좋은 말만 늘어놨다. 서정희가 한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