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0장

너무도 익숙한 글씨체였다. 염정훈의 글씨체였다. 커다란 벚꽃 나무를 얼핏 봐도 수 천 개는 걸려 있었다. “누나. 이거 다 아저씨가 직접 적은 거예요. 누나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요.” 서정희는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들어가서 어머님께 인사드릴게.” 염도하의 어머니는 오히려 더 젊어진 것 같았다. 생활이 개선되니 사람의 마음도 덩달아 밝아진 모양이었다. 서정희가 온 걸 알고, 그녀는 바로 닭장에서 닭 한 마리를 잡았다. “정희 씨, 드디어 왔네. 왜 이렇게 말랐어. 내가 오늘 씨암탉 한 마리를 잡아서 제대로 몸보신 시켜줄게.” 서정희는 거절할 수 없어서, 주방에서 함께 거들기로 했다. 그런데 주방은 이미 현대식으로 바뀌었고, 더 이상 고기 한 끼 먹기 어려웠던 처지가 아니었다. “어머님, 지한 씨가 돌아온 적 있어요?” 그녀는 쌀을 푸면서 말했다. “그놈을 못 본 지도 꽤 됐어. 다만 정기적으로 안부 전화는 와.” 그러자 서정희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대개 얼마 만에 한 번 씩 전화가 와요?” “두 석 달?” “지난번에 연락 온 게 언제에요?” “시월이었어.” 그럼 최근에 연락한 거네. “어머님, 제가 부탁드릴 일이 있어요.” “뭐든 말해. 우리 섬이 이렇게 된 거 다 정희 씨 덕분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할게.” 서정희는 몇 마디 부탁하고, 민경과 함께 섬에 머물기로 했다. 이곳은 안전했고, 그녀가 사람들 앞에 드러날 위험이 적었다. 염정훈도 피할 수 있었고,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도 피할 수 있었다. 섬에는 인프라가 이제는 완벽했다. 살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매일 염도하는 민경과 함께 바닷가에서 뛰놀았고, 민경도 섬 생활을 좋아했다. 서정희는 밀물과 썰물, 일출과 일몰을 보면서 하루하후를 지냈다. 그녀는 염정훈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의 마음 한편은 늘 불안했다. 어느날 갑자기 악마 같은 그 사람이 나타날 수 있을 테니까. 어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