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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방 안에서, 하지안은 지쳐 소파에 쓰러져 깜빡 잠들고 말았다. 쾅!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하지안은 자신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 차건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얼굴은 짙은 먹구름처럼 어두웠고 눈빛은 마치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 같았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한 하지안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차건우가 서늘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감히 나 몰래 바람을 피워?” 하지안은 어리둥절했다. “무슨 소리예요?” “연기 잘하네? 배우 했으면 대박 났겠다.” 차건우는 들고 있던 종이를 하지안의 얼굴에 던졌다. “말해. 뱃속에 있는 그 아이, 누구 애야?” 순간 몸이 굳어진 하지안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손발이 떨리고 손끝까지 차가워졌다.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차건우가 알아버렸다. ‘어떻게 알았지?’ 시선을 아래로 내려 바닥에 떨어진 혈액 검사지를 보자 모든 상황이 이해됐다. 하민아가 고자질한 거였다. 차건우는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다가와 그녀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남의 애를 배고선 할아버지 곁에 들러붙고 그 옛날 목숨 구해줬다는 걸 빌미로 결혼식 당일 여동생의 자리를 뺏고 나랑 결혼까지 했지. 앞으로 8개월 동안 할아버지한테 임신 사실을 들이밀면서 차씨 가문에 눌러앉으려고 했어?” 하지안이 목소리를 떨며 힘겹게 말했다. “진짜 아니에요.” 차건우가 싸늘히 웃으며 말했다. “하... 정말 뻔뻔하네. 지금 당장 그 뱃속에 애 지워.” 눈이 휘둥그레진 하지안은 본능적으로 배를 감쌌다. “안 돼요, 아이는 안 지울 거예요. 제발...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계약 기간 끝나면 바로 떠날게요. 정말 맹세해요. 그냥 이 아이만 남길 수 있게 해주세요.” 하지안이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했지만 차건우는 싸늘한 기운을 뿜으며 그녀의 팔을 잡았다.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싫어요. 이거 놔요! 우린 계약 결혼이잖아요. 제 사생활까지 간섭할 권리는 없어요. 더구나 제 아이를 마음대로 없애버릴 자격도 없고요!” 하지안이 격렬하게 저항하자 차건우가 싸늘히 일갈했다. “차씨 가문에 들어온 이상 복종만 있지 거절할 자격은 없어.” 그가 명령을 내리자 경호원들이 들이닥쳐 하지안을 끌고 나가려 했다. 그녀는 온몸의 힘을 다해 문틀을 붙잡았지만 역부족이었다. 하지안이 절망 가득한 얼굴로 바깥으로 끌려 나가는 순간 차건우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요! 계약 조기 해지할게요.” 차건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이번엔 또 무슨 수작이야?” “당신은 내가 계약이 끝나도 아이를 핑계로 차씨 가문에 남을까 봐 의심하고 있잖아요? 그럼 지금 당장 계약 끝내요. 바로 이혼해요. 대신 아이만은 건드리지 마세요.” 그녀의 단호한 말에 차건우의 눈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이혼 시기는 내가 정하는 건데... 뭐가 이렇게 급한 거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차씨 가문에 남게 해달라고 울면서 매달리더니 이젠 잡종 하나 때문에 나가겠다고? 네 엄마에 대한 네 마음도 별거 없네? 잡종보다 못한 존재였나 봐?” “아이에게도 생명이 있어요.” 하지안의 눈동자가 떨렸다. “당신처럼 냉혈한만 있는 건 아니에요. 엄마라면 이해해 주실 거예요.” 이 아이를 잃으면 더 이상 임신할 수 없는 하지안은 더 간절하게 아이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너한테 결정할 권한은 없어.” 차건우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뱃속에 있는 잡종은 바로 없애. 그리고 이혼은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 내가 알아서 할 거야.” 하지안은 그를 올려다보며 조소를 지었다. “그렇게 하민아랑 결혼하고 싶어 했잖아요. 이번 기회에 이혼하고 하면 되잖아요. 혹시 절 좋아하게 돼서 이혼 못 하는 거예요?” “잠꼬대하는 거야?” 차건우는 코웃음을 쳤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아이를 밴 여자를 좋아할 리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내일 아침 아홉 시에 법원으로 와. 바로 이혼해.” 말을 마친 차건우는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마자 하지안은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겨우겨우 숨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이혼 유도는 성공했어. 그런데 왜 이렇게 허탈하지?’ 차씨 가문에 들어온 건 고유정의 소원이자 그녀가 피눈물 흘리며 지켜낸 결과였다. ‘이렇게 쉽게 끝내도 되는 걸까?’ 하지안은 눈물을 훔치고 소파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그녀는 핸드폰에 충전하는 것도 잊고 그렇게 잠들어 버렸다. 차씨 가문 저택을 나선 차건우가 하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아침 9시까지 서류 챙겨서 법원으로 와.” “네?” 하민아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설마... 저랑 혼인신고 하시려는 거예요?” “그래.” “꺄악!” 하민아는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건우 씨가 저를 아내로 맞이하는 거네요? 저 너무 행복해요!” 눈살을 찌푸린 차건우는 그저 귀찮다는 생각만 들었다. 정신을 차린 하민아는 뒤늦게 깨닫고 급히 물었다. “건우 씨, 너무 기뻐서 잠깐 흥분했어요. 그런데 언니랑 아직 이혼 전인데 혼인신고를 할 수 있나요?” 차건우가 담담히 답했다. “내일 합의 이혼하고 바로 혼인신고 하자.” “네, 알겠어요. 건우 씨, 내일 꼭 예쁘게 꾸미고 갈게요. 절대 건우 씨 체면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할게요!” 하민아는 신이 나서 전화를 끊었다. ‘역시 엄마가 가르쳐준 방법이 최고야. 그 어떤 남자도 자기 몰래 바람피우는 여자를 용서할 리 없지. 차건우처럼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 있는 남자라면 더...’ 내일이면 자신이 진짜 차씨 가문 사모님이 된다는 생각에 하민아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잠이 오지 않았던 하민아는 얼굴에 마스크를 붙인 채 흥얼거리며 내일 혼인신고 때 입을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 다음 날 아침, 하지안은 일곱 시 정각에 눈을 떴다. 창밖은 이미 훤히 밝아져 있었다. 세수와 양치질을 끝낸 후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실 몇 벌의 옷 외에는 챙길 것도 없었다. 하지안은 자신의 물건을 가방에 조심스레 넣은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차씨 가문 저택에서 법원까지 대략 한 시간이 걸리니 지금 출발하면 딱 맞을 타이밍이었다. 거실에 발소리가 나자 진 집사가 고개를 들었다. “사모님, 아침 식사 준비되어 있습니다.” “볼일이 있어서 바로 나가 볼게요.” 진 집사가 말했다. “오늘 저녁엔 오리구이가 나올 예정입니다. 사모님, 일찍 들어오세요.” ‘저녁? 앞으로 다시 이 저택에 돌아올 일은 없겠지.’ 하지안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고마워요, 진 집사님.” 차준혁과 진 집사는 차씨 가문에서 하지안이 유일하게 정을 느끼는 따뜻한 존재들이었다. 시간을 다시 확인한 하지안은 대문을 열고 조용히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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