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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다음 순간, 한은별은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듯 몸을 홱 돌리더니 울면서 달려 나가 버렸다. 서윤성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서윤성은 거의 반사적으로 조민아에게서 몸을 떼어내며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그러고는 망설임도 없이 한은별이 사라진 방향으로 뛰어갔다. 조민아는 차가운 벽을 타고 주저앉았다. 몸에는 아직도 끈적한 감각이 남아 있었고,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참 우스웠다. 한은별이 둘을 본 것만으로도, 서윤성은 저렇게 허둥지둥 뛰쳐나갔다. ‘서윤성은 도대체 나를 뭐로 본 걸까. 그저 필요할 때 쓰는 사람으여로 보는 걸까.’ 조민아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흐트러진 치맛자락을 정리한 뒤, 영혼이 빠져나간 인형처럼 한 걸음씩 그 역겨운 구석을 벗어났다. 그런데 로즈 클럽 뒷문을 막 나서는 순간, 머리 위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뛰어내렸어요!” 조민아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로즈 클럽 위층에서 어떤 그림자가 곧장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 그림자는 빗나가지도 않고, 막 뒷문을 나온 조민아 위로 그대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전신을 찢는 듯한 통증이 몰아쳤다. 따뜻하고 끈적한 액체가 조민아의 얼굴과 몸에 튀었다. 의식이 완전히 어둠에 잠기기 직전, 조민아는 흐릿한 시야로 보았다. 조민아의 위에 떨어진 사람은, 조금 전 울면서 달려 나갔던 한은별이었다. ... 조민아가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병원 특유의 진한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조민아는 몽롱한 상태로 자신이 수술실로 밀려 들어가는 걸 느꼈다. 그때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두 분 다 상태가 너무 심각해요! 뇌출혈에, 골절도 여러 군데고요... 그런데 오늘 연쇄 추돌 사고 환자들이 한꺼번에 들어와서 혈액도 부족하고, 수술실도 이제 한 칸밖에 남지 않았어요. 수술이 늦어지는 분은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서 소장님, 어느 분을 먼저...” 곧이어 서윤성의 쉰 목소리가 팽팽하게 터져 나왔다. “둘 다 살려야 해. 전원은 안 돼?” “안 됩니다, 서 소장님! 두 분 다 지금 상태로는 옮기는 것 자체가 위험해요. 소장님이... 반드시 결정하셔야 합니다.” 숨이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조민아는 간신히 눈을 아주 조금 떴다. 수술실 문 앞에 서 있는 서윤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얼굴에는 조민아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갈등과 고통이 서려 있었다. 결국 서윤성은 온 힘을 짜내는 것처럼, 한 글자씩 입을 열었다. “먼저... 은별이를 살려.” ‘먼저, 은별이를...’ 이미 진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서윤성이 직접 그 선택을 내리는 걸 귀로 듣는 순간, 조민아의 심장은 한순간에 으스러지는 것처럼 아파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그런데도 조민아는 웃었다. 산소마스크 아래에서, 입꼬리가 아주 희미하게 올라갔다. 그건 차갑게, 뼛속까지 식어 버린 웃음이었다. ‘역시... 그렇지.’ 조민아는 다시 의식 속으로 가라앉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조민아가 다시 천천히 눈을 떴을 때, 서윤성이 병상 곁을 지키고 있었다. 조민아가 깨어난 걸 보자 서윤성은 곧바로 몸을 숙였다. “어때? 아픈 데는 없어?” 조민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서윤성의 손길을 피했다.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수술실 문 앞에서, 넌 이미 내 생사를 포기하고 한은별을 선택했잖아. 이제 와서 왜 걱정하는 척해.” 서윤성은 조민아가 그 말을 들었을 줄 몰랐던 듯, 몸이 확 굳었다. 서윤성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 오래여서, 조민아는 서윤성이 끝내 대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은별이는... 예전에 부대에서 위문공연단 담당자로 함께 다닌 적이 있어. 그 뒤로 큰 병을 앓고 몸이 계속 약했어.” 서윤성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 “그런 상황에서 은별이가 즉시 수술받지 못하면... 정말로 위험했어. 그래서 먼저 은별이를 선택했어.” 서윤성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조민아를 바라봤다. “그 뒤로 다른 병원 수술실 자리를 바로 조율했어. 어떻게든 너도 제때 수술받게 하려고... 민아야, 나는 너를 버린 게 아니야.” 조민아는 그 변명을 듣고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마음속은 그저 황량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조민아가 비웃듯이 말했다. “서윤성, 한은별이 그냥 예전 부대 동료였고, 몸이 약해서 챙겨야 하는 부하였으면... 왜 우리를 보고 무너진 거야?” 조민아는 서늘하게 말을 이었다. “왜 감정이 폭발해서, 그 자리에서 투신까지 했는데?” 서윤성은 다시 침묵했다. 조민아는 서윤성의 목울대가 한 번 굴러가는 걸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서윤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은별이한테... 아주 사랑했지만 여러 사정 때문에 함께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어. 그래서 감정이 계속 눌려 있었고, 상태가 안정적이지 않았지.” 서윤성은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말을 이어 갔다. “그날 로즈 클럽에서 우리를 본 게... 자극이 됐을 거야. 순간적으로 충동적으로 그런 선택을 한 거고.” 조민아는 말없이 서윤성을 바라봤다. 서윤성의 냉정하게 다듬어진 턱선, 물결 하나 없는 눈동자가 보였다. 조민아는 서윤성이 거짓말을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다. 조민아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조민아가 서윤성 품에 파고들어 군복 단추를 만지작거리며,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말했었다. “윤성아, 나는 남이 나를 속이는 거 제일 싫어. 우리 엄마가... 아빠가 쌓아 올린 거짓말 속에서 살다가, 결국 목숨까지 잃었거든. 네가 나 속이면... 나는 진짜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날 거야.” 그때 서윤성은 조민아의 머리 위에 입을 맞추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널 안 속일 거야.” 그런데 지금은 거짓말이 하나, 또 하나 이어졌다. 조민아에게 사랑은 원래, 있으면 더 좋은 것이었다. ‘되면 함께 있고, 아니면 말고...’ 조민아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빛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니 서윤성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확신한 그 순간, 서윤성은 조민아의 세계에서 이미 완전히 끝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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