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찡그린 미간을 못 보고 진수빈의 무거운 말투만 들었으면 그가 지금 질문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을 거다.
문가영은 몸을 뒤로 움츠리며 곧장 시선을 내린 채 애써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는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아니요. 눈에 벌레가 들어가서요.”
진수빈도 찡그린 미간을 펴고 더 이상 캐묻지 않은 채 넘어갔다.
“보청기는 왜?”
문가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이젠 괜찮아요.”
다만 원래도 작은 목소리가 잠겨 있기까지 하니 누가 봐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말을 마친 그녀는 조심스레 시선을 들어 진수빈을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용기를 내서 물었다.
“날 찾으러 나온 거예요?”
진수빈도 부정하지는 않았다.
“방 선생님이 기분 안 좋아 보인다고 가보라고 해서. 왜 기분이 안 좋은 건데?”
문가영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내 입으로 내 생일이라고 어떻게 말해.’
문가영은 말이 없었다.
손에 든 휴대폰 화면이 번쩍이자 진수빈도 이를 알아채고 말했다.
“전화부터 받아.”
문가영은 꼭두각시처럼 전화를 받으라는 그의 명령에 따랐고 곧이어 진예은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영아, 서프라이즈! 생일 축하해! 지금 나 누구랑 같이 있는 줄 알아? 장연수 만났어. 네 생일이라고 하길래 나도 방금 생각났어. 미안해, 자기. 내가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 이번 인터뷰 끝나면 제대로 챙겨줄게. 알았지?”
진예은의 목소리는 맑고도 또렷했고, 문가영은 청력이 좋지 않은 탓에 습관적으로 휴대폰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 있었다.
심장이 철렁했다. 진수빈이 진예은의 말을 듣지는 않았을까.
시선을 들자 마침 진수빈의 알 수 없는 눈빛과 마주친 그녀는 휴대폰을 꽉 쥐며 진예은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돌아와서 얘기하자. 나 지금 병원이라 나중에 전화할게.”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
짧은 침묵이 흐른 뒤 진수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생일이야?”
문가영은 조마조마하던 마음을 내려놓으며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천재로 소문날 만큼 똑똑했고 한번 보면 잊어버리지 않는 진수빈이 문가영과 그토록 많은 생일을 함께 했음에도 기억하지 못한다니.
문가영은 입술을 달싹이며 떠오르는 생각을 알아서 정정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기억하기 싫은 거다.
진수빈이 천천히 되물었다.
“왜 말 안 했어?”
문가영은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잊고 있었어요.”
말이 없는 그녀를 보고도 진수빈의 얼굴엔 별다른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듯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가 덤덤하게 말했다.
“오늘 생일이면 가서 네 케이크도 주문해 줄게. 하지만 지금은 여민지 생일 망치지 마. 네가 이러면 걔가 어떻게 생각하겠어?”
처음으로 진수빈 입에서 걱정 비슷한 말이 흘러나왔다. 물론 걱정하는 상대가 그녀는 아니었지만.
진수빈은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달랐다. 차분하고 침착해서 무슨 일이든 크게 영향받지 않았다.
문가영은 그를 바라보며 씁쓸함을 삼킨 채 천천히 물었다.
“여민지 씨가 기분 나빠할까 봐 걱정돼요?”
진수빈이 그녀를 바라보며 대꾸했다.
“알려주는 거야. 분위기 망치는 행동하지 말라고.”
...
문가영은 결국 진수빈과 함께 식당으로 돌아왔지만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함영희만이 다가와 그녀를 걱정해 주었다.
“보청기 괜찮아요?”
“네.”
함영희는 그녀를 바라보며 눈을 깜박이더니 싱긋 웃었다.
“아까 진 선생님이 이희성 씨한테 화냈어요.”
이희성은 조금 전 그녀가 귀머거리라며 안타깝다고 했던 의사다.
문가영이 나지막이 되물었다.
“그래요?”
“네. 진 선생님께서 사람 존중하지 않는다고, 의사로서 교양이 없다고 했어요. 가영 씨, 진 선생님이 그래도 제법 가영 씨 편을 들어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