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문가영은 입술을 다물고 함영희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진수빈이 자신을 싸고도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의사로서 환자를 걱정하는 것임을 너무 잘 알았으니까.
훌륭한 의사라 늘 이성적으로 환자를 책임감 있게 대하며 의상의 본분에 충실할 뿐이었다.
그게 문가영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될 수는 없었다.
문가영이 저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여민지가 케이크를 잘라서 나눠주는 게 보였다.
문사라와 제법 닮은 얼굴을 하고서도 그녀는 잘 웃지 않았다. 지금 케이크를 자르는 것조차 수술을 집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진수빈은 다른 쪽에서 방우지와 함께 자료를 보며 환자의 병에 대해 의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여민지가 접시를 들고 진수빈 앞에 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물건 들어줘서 고마워요.”
진수빈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아니에요. 아주머니, 아저씨가 잘 챙겨주라고 했잖아요.”
“두 분은 별걸 다 신경 쓰네요.”
진수빈은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돌린 채 눈앞에 놓인 환자 케이스를 계속 들여다보았다.
방우지가 방금 가져온 환자의 이전 치료 기록이 적힌 자료였다.
여민지 역시 다가가 무심하게 물었다.
“이건 뭐예요?”
“금방 입원한 환자인데 두개골 골절에 뇌수막종, 다른 질환까지 겹쳐서 좀 복잡한 상태예요.”
멈칫하던 여민지도 같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방우지도 그들과 함께 자료를 살펴보다가 누군가 불러서 자리를 떴다.
가기 전에 마침 진수빈과 여민지가 환자에게 보수적인 치료가 더 적합한지 여부를 두고 다투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저으며 둘을 말렸다.
“지금은 식사 시간이에요. 다투고 싶어도 내일 회의할 때 다퉈요.”
그런데 진수빈과 여민지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이구동성으로 대꾸했다.
“좀 더 연구해 볼게요.”
방우지는 어이가 없어서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보니 문가영과 함영희가 앉아 있었고, 문가영의 시선이 전수빈과 여민지를 보고 있는 게 아니겠나.
과에서 처세술로 으뜸이던 방우지는 문가영과 여민지의 관계에 대해서도 막연하게 알고 있었기에 깎아놓은 과일 한 접시를 들고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다들 다이어트한다고 케이크 안 먹는 거예요? 그러면 과일이라도 먹어요. 신선하고 맛있네요.”
문가영이 나지막이 말했다.
“방 선생님, 감사해요.”
방우지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동료끼리 뭘 예의를 차려요. 참, 시간 나면 정 선생님 좀 말려요. 일에 빠져서 식사하는 시간에도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여 환자 사례 연구하지 말라고.”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진수빈을 돌아보며 혀를 찼다.
“봐요. 여 선생님도 모자라서 이 선생, 조 선생까지 끌어들였네요.”
문가영이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진수빈 쪽에서 회의라도 하듯 여러 의사가 모여 있었다.
문가영은 눈을 깜빡이며 움켜쥐고 있던 손가락을 풀었다.
방우지가 가고 함영희는 나지막이 그녀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진 선생님과 여 선생님이 환자 케이스에 관해 토론하고 있었구나. 난 또 진 선생님이 웬일로 여 선생님과 즐겁게 수다를 떠나 했지.”
문가영은 조용히 대꾸만 했다.
당직인 사람들도 있어서 식사 자리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고 낮 타임이었던 문가영도 곧장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함영희는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비가 언제 그칠지 모르겠네요. 곧 또 비 올 것 같은데 가영 씨는 집에 어떻게 가요?”
문가영이 말을 하기도 전에 방우지가 다가와 끼어들었다.
“문 간호사님은 진 선생님이랑 가겠죠. 오늘 당직도 아닌데.”
문가영이 진수빈을 돌아보았지만 그는 지금 여민지와 대화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었다.
방우지의 말에 그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같이 안 갑니다.”
방우지는 당황했다.
“네?”
여민지는 손에 든 차트를 뒤적거리다가 문가영을 슬쩍 보고는 이내 시선을 돌리며 차분하게 말했다.
“저랑 진 선생님은 이 케이스 조금 더 연구하다가 연구실 돌아가려고요.”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문가영에게 말했다.
“문 간호사님, 그래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