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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3화

문가영과 진수빈의 예상이 맞았다. 하진의 상태는 단순한 유산이 아니었다. 내부 장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지만 작은 마을 병원에서는 정밀검사가 어려워 전북 시내로 돌아가야 했다. 하진은 유산 사실을 알고 난 뒤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진수빈은 밖에서 가족과 회사에 연락을 돌리고 있었고 병실 안에서는 문가영이 그녀의 곁을 묵묵히 지켰다. 문가영은 수액 속도를 조절하면서 말했다. “오늘 밤은 여기서 상황을 지켜보죠. 내일 전북 병원으로 옮기면 정밀 검사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덧붙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요. 크게 위험한 상황은 아닐 거예요. 치료만 잘 받으면 아무 문제 없어요.” “하지만 내 아이는 없잖아요.” 하진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오늘에서야 임신한 걸 알았는데요...” 문가영은 절망에 잠긴 환자의 눈빛을 수없이 보아왔지만 그럴 때마다 해줄 수 있는 건 위로뿐이었다. 그러나 하진은 그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혼잣말만 되뇌고 있었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 문가영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곧 노크 소리가 들렸다. 진수빈이었다. 문가영은 병실을 나서며 의사를 안으로 들여보내 검사를 부탁했다. 복도에 나온 후, 문가영은 진수빈의 지친 얼굴을 바라보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생명이란 게 참 쉽게 무너지는 것 같아요.” 진수빈이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다시 물었다. “더 이상 의사로 일할 수 없게 된 거, 후회되진 않아요?” 문가영이 진수빈에게 처음 꺼내보는 질문이었다. 진수빈은 잠시 침묵하다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회돼.” 어쩌면 진수빈은 처음에 자신의 심리적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의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후로 사람들에게 생명의 희망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뜻깊은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진수빈의 말을 들은 문가영은 생각에 잠겼다. 조금 전 하진을 응급처치하는 그의 모습은 예전처럼 침착하고 능숙했다. 게다가 함영희도 말했었다. 병원과 오랜 줄다리기 끝에 결국 진수빈은 다시 진료를 맡게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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