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1화

서울과 부산을 뒤흔든 고씨와 하씨 두 가문의 약혼식은 당일 친아들이 나타남으로써 완전히 망쳤다. 연예계에서 몸을 함부로 굴리기로 유명한 스타 민효영이 고씨 가문의 사생아를 안고 연회장에 쳐들어와 침대 위에서 찍은 사진이 인쇄되어 있는 종이를 신부 하가윤에게 뿌렸다. 순간 플래시 세례가 미친 듯이 터졌다. 하지만 하가윤은 생방송 카메라를 향해 오열하는 민효영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고의찬만 바라봤다. “내게 할 말 없어?”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인 고의찬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하가윤의 마음을 순식간에 식게 하는 말을 내뱉었다. “그냥 사고야, 아이가 생길 줄은 몰랐어.” 잠시 침묵하더니 경호원들에게 그들을 내보내라고 손짓한 뒤 고개를 숙여 하가윤의 귓불에 입을 맞췄다. “걱정 마, 깔끔하게 처리할게.” 하가윤은 북받치는 분노를 억누르기 위해 웨딩드레스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고의찬의 사고를 눈감아 줄 수밖에 없었다. 고의찬이 조금 전 한 말을 지키길 바랄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효영 모자는 마치 증발한 것처럼 하가윤의 삶에서 사라졌다. 마치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부산 사람들은 풍수를 많이 믿었기에 하가윤은 일부러 길일을 골라 혼인 신고하러 구청에 갔다. 하지만 컴퓨터 화면 속 그 낯설고도 익숙한 이름을 본 순간 그 자리에 멍해졌다. [고유현.] 이것은 고의찬이 어느 날 밤 하가윤의 몸 위에서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미래 아들에게 지어준 이름이었다. 그런데 고씨 가문의 호적부에 벌써 나타나다니... 하가윤이 망설이자 앞에 있는 직원은 불쾌한 얼굴로 책상을 탁탁 두드렸다. “하가윤 씨, 본인 아들 이름도 모르나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하가윤은 컴퓨터 화면 속 ‘고유현’이라는 세 글자를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유현의 출생증명서 한 부 출력해 주세요.” 종이에 찍힌 고유현의 이름을 본 순간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의찬 엄마 란에 하가윤의 서명을 모방한 사인이 있었다. 날짜는 바로 3년 전이었다. 8년간의 연애,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의찬 곁을 지키면서 하씨 가문의 딸이라는 신분까지 기꺼이 포기하고 가장 경멸하던 재벌가 사모님이 되었다. 그렇게 되어 고의찬에게 이해심 많고 너그러운 약혼녀가 있다는 것을 서울 바닥에서 다 알게 되었다. 약혼녀가 된 하가윤은 재벌가 사모님들과의 인맥을 아주 잘 처리했다. 하가윤의 아빠 하준호는 출장 때문에 일이 바빠 그녀 곁에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보니 고의찬이 하준호보다 그녀를 더 잘 알았다. 하지만 결국 어떻게 됐는가? 오히려 너무 잘 알았기에 그것이 더 큰 해가 되었다. 고의찬은 하가윤을 속이고 연예계에서도 평판이 나쁘기로 유명한 여자와 잠자리를 하고 아이를 낳았다. 게다가 결혼 전 당당하게 사생아를 처리하겠다고 해놓고 고씨와 하씨 두 가문의 합법적인 상속인으로 호적에 올렸다. 그야말로 부산 하씨 가문의 체면을 바닥에 짓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가윤은 아이 이름을 정했던 그날 밤이 생각났다. 고의찬은 흥분 가득한 눈빛으로 하가윤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아이의 이름만 되풀이했다. “아이가 햇살처럼 빛나길 바라, 우리 고씨 가문을 빛내길 바라...” 그때는 하가윤도 고의찬이 만들어 낸 환상에 빠져 이상하다고는 느꼈지만 별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말은 칼처럼 하가윤의 심장을 꿰뚫었다. 고유현이라는 이름은 처음부터 이 잡종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심장을 찌르는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면서 차를 몰고 고씨 가문으로 돌아갔다.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맴돌았다. ‘고의찬이 납득할 만한 설명이라도 해주길...’ 그렇지 않다면 서울과 부산을 떠들썩하게 한 비즈니스 결혼이 비즈니스 전쟁으로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차가 별장 근처까지 왔을 때 북적이는 인파에 길이 막혔다. 모여있는 사람들 한가운데 민효영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운전석의 하가윤을 향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하가윤 씨, 고씨 가문 사모님 자리를 빼앗아 간 건 원망하지 않아요. 하지만 유현이만은 돌려주세요... 유현이는 제 목숨이나 다름없어요!” 수많은 기자들이 피 냄새를 맡은 상어처럼 달려들며 창문 안으로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민효영 씨 말로는 하가윤 씨가 사람을 보내 아이를 데려갔다고 하던데 왜 이런 선택을 하셨는지요?” “하가윤 씨, 이 아이를 인정하실 생각이신가요? 아니면 민효영 씨가 제안한 두 여자가 한 남자를 모시자는 요구를 받아들일 건가요?” 차 창문이 서서히 내려가자 극도로 냉담한 하가윤의 옆얼굴이 드러났다. “무릎 꿇고 동정을 구걸하라고 말해준 사람이 그건 얘기 안 했나 봐요? 내가 극도로 싫어하는 게 협박하는 사람이거든요.” 말을 마친 하가윤은 곧바로 액셀을 힘껏 밟고 앞으로 나아갔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진 순간 고의찬이 옆에서 뛰쳐나와 민효영을 힘껏 밀쳐냈다. 고의찬 본인은 관성에 의해 몇 걸음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쿵 하고 넘어졌다. 타이어가 지면에 마찰하면서 고막을 찢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차는 고의찬과 불과 몇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춰 섰다. 깜짝 놀란 하가윤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밖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고의찬은 몸의 상처 따위 전혀 개의치 않고 빠른 걸음으로 많이 놀란 듯한 민효영에게 다가가 자상하게 위로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하가윤을 바라봤다. 하가윤에 대한 사랑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난감함이 눈빛에 스쳤다. “그만 좀 해, 아무리 그래도 효영이는 고씨 가문 상속자 생모야! 어느 정도 체면은 줘야 하지 않겠어!” 차라리 농담이라면 웃음이 나오겠지만 코가 막히고 귀가 막힌 이런 말들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기자들을 불렀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거기에 하가윤이 하지도 않은 일을 인정하라고 하다니! ‘체면을 봐주라고?’ 피식 냉소를 터뜨린 뒤 차에서 내려 고의찬 앞으로 걸어간 하가윤은 손을 들어 그의 따귀를 힘껏 때렸다. 찰싹! 맑은소리에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너무 세게 때린 탓에 고의찬의 얼굴에 손바닥 자국이 뚜렷하게 났다. 하지만 하가윤은 그의 얼굴 상처 따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약지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빼서 바닥에 내던진 뒤 뒤돌아 차에 탔다. 멀어지는 하가윤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고의찬은 가슴이 심하게 오르락내리락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깊게 숨을 들이쉰 뒤 허리를 굽혀 반지를 주워 들고는 카메라를 향해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와이프가 지금 화가 많이 난 것 같네요. 여러분 볼 면목이 없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고씨 가문의 핏줄은 절대 밖에 내칠 수 없습니다.” 멀리서 위선적인 고의찬의 연기를 바라보는 하가윤은 그저 코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오랫동안 저장해 두었지만 한 번도 걸지 않았던 번호를 눌렀다. “경빈 오빠, 동생 와이프와 결혼할 생각 없어? 고씨 가문 재산 나눠 가질 생각은?” “하가윤 씨가 모두가 경멸하는 고씨 가문 사생아인 나를 선택해 준다면 나야말로 영광이겠지.” 전화기 너머로 장난기 어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잖아, 좀 이따 10분 후에 구청 앞에서 만나.” 반 시간 후. 하가윤은 뿌듯한 얼굴로 혼인신고서를 바라보며 옆에 있는 남자의 어깨를 손으로 톡톡 쳤다. “결혼식 날짜는 그대로야, 열흘 후에 내 신랑 될 준비나 제대로 하고 와.”
Previous Chapter
1/14Next Chapter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