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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4화

앞 좌석의 운전기사는 조용히 칸막이를 내렸다. 뒤에서 유승준이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렸다. “꼭 그렇게 말해야 해?”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밝아진 화면에는 선명하게 두 글자가 보였다. [여보.] 유승준은 얼굴색이 또다시 변한 채 그녀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전화를 받는 것을 보았다. “여보, 나 출장 중이에요. 네, 일주일 뒤에 돌아올 것 같으니 회사 일은 당신이 먼저 좀 봐줘요. 임신 준비요? 지금요? 그럼 제가 돌아가고 나서 얘기해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네, 그래요. 당신 말대로 할게요.” 이 두 마디는 정말로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녀가 전화를 끊자 유승준의 목소리가 음산하게 변했다. “이제 임신 준비를 하는 건가?” 질투심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예코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대답했다. “어쩔 수 없어. 나이도 있고 집에서도 워낙 재촉해서 말이야.” 그의 시선이 예코의 배로 향하더니 마치 그곳을 불태울 것처럼 노려보았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를 낳으려고? 설마 그 무능한 놈을 정말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 예코, 넌 그렇게 비이성적인 여자 같지 않은데.” 예코는 창밖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 사람이 바람을 피우는 건 그 사람의 문제야. 나는 그 집안에 빚진 게 많아. 아이를 낳는 것으로만 그 빚을 갚을 수 있어. 그 사람의 아버지가 아이를 매우 원하시거든.” 유승준은 순간 초조해져 그녀의 머리를 억지로 돌렸다. “이런 생각이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 너 자신도 그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얼마나 불쌍하겠어? 게다가 네 남편은 밖에서 함부로 행동하고 외모도 평범하고 무능력한 놈인데 그런 사람의 유전자가 좋을 리가 없잖아?” 예코는 그가 초조해져서 조금 붉어진 얼굴을 보며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유승준은 언제나 여유롭고 차분했다. 이렇게 감정이 격화게 드러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는 견딜 수 없었다. 다른 남자의 씨가 그녀의 뱃속에서 싹트고 자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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