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따귀 때문에 머리가 옆으로 돌아갔다. 이진아의 두 눈에 빛이라곤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이수아는 황급히 문채원의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
“엄마, 난 정말 괜찮아요. 카드에 2억밖에 없어요. 언니가 또 예전처럼 흥청망청 쓸까 봐 많이 넣지 않았어요.”
이진아는 목이 메어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옆에 주차된 택시 문을 벌컥 열고 말했다.
“저기 죄송한데요...”
하지만 지명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유리창 너머로 네 가족이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택시 기사가 말했다.
“저 사람들 가족이에요, 원수예요? 방금 손님이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다짜고짜 뺨이나 때리고. 2만 원 안 받을 테니까 그냥 내리세요.”
그 순간 억지로 참고 있던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 또한 묻고 싶었다. 저 사람들이 가족인지, 원수인지.
이수아는 강서준의 손을 잡고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엄마, 서준 오빠, 언니 정말로 기억을 잃은 게 아닐까요? 다시 오라고 하는 게 좋겠어요.”
딸에게 남은 거라곤 미움뿐인 문채원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기억을 잃었다면 여기도 찾아오지 못했겠지. 서준아, 아무래도 하루빨리 진아랑 파혼하는 게 좋겠어. 수아 힘들게 하지 말고. 수아가 밖에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어휴, 더는 우리 수아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 수아한테 평생 잘하겠습니다.”
이진아와 강서준이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죽마고우인 건 맞지만 그동안 좀 질린 것도 사실이었다.
과거 이진아와 이수아가 함께 집을 나갔다가 이수아가 유괴당했었다.
5년 전 이수아를 찾고 나서야 그때 이수아가 이진아를 지켜주려고 이진아더러 먼저 달려가서 경찰에 신고하게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진아는 도망치기만 했고 신고하기는커녕 여동생이 유괴당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런 사람은 참 어릴 때부터 심성이 나빴다. 이수아가 돌아온 후에도 이진아는 사랑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동생을 괴롭혔다.
강서준이 이수아를 감싸기라도 하면 더욱 제멋대로 날뛰었다. 결국 지금 이 상황은 다 자업자득인 것이다.
...
이진아가 얇은 환자복을 입은 채 홀로 길가에 앉아 있었다. 그때 차 한 대가 그녀 옆에 멈춰 섰다.
“이진아?”
젊은 여자의 목소리에 이진아가 고개를 들었다. 조금 낯익은 얼굴이었지만 누구인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너 또 강서준이랑 싸웠어? 집 나오기 전에 옷이라도 좀 제대로 갈아입고 나오지.”
“누구시죠?”
서다혜가 조수석 문을 열었다.
“일단 타. 가끔 사람들이 너한테 뭐라 하는 것도 이해가 가. 같은 수법을 너무 여러 번 쓰면 당연히 짜증 나지. 난 네가 왜 강서준한테 이렇게까지 목을 매는지 모르겠어.”
이진아는 조수석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다혜가 차에 시동을 걸더니 지금 사는 아파트로 달려갔다.
“오늘 밤은 우리 집에서 자.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또 그 사람을 찾아갈 테지만.”
그녀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간 이진아는 현관에서 조심스럽게 신발을 갈아 신었다. 이 집안의 구조가 익숙한 걸 보니 아무래도 그녀의 절친인 듯했다.
이진아가 소파에 앉자 서다혜가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주었다. 컵을 쥐고 나서야 겨우 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서다혜는 몹시 피곤한 듯 하품을 했다.
“나 먼저 씻을게. 넌 전에 쓰던 방에서 자. 내일 아침에 갈 때 전에 두고 간 옷도 챙겨가고.”
“난 가끔 네가 좀 씩씩했으면 좋겠어. 자꾸 쉽게 강서준한테 항복하지 말고. 너 매번 집을 나와도 3일을 넘기지 못하잖아. 강서준이 살짝만 달래도 바로 쫄래쫄래 달려가고. 이러니까 걔랑 걔 친구들이 널 우습게 생각하지. 제발 정신 좀 차려. 진아야, 만약 어느 날 갑자기 네가 정말로 기억을 잃는다면 축하 파티라도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