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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더는 이진아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주지훈은 다시 차로 돌아왔다. 이진아는 전동 스쿠터의 손잡이를 꽉 잡고 자리에 가만히 서서 멀어져가는 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차 안, 강현우가 고개를 숙여 서류를 보고 있는데 주지훈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아봤는데 또 강서준 씨랑 이수아 씨 때문에 질투해서 저러는 거랍니다. 아무래도 파혼당할 것 같은데. 정말 쌤통이에요.” 강현우가 서류를 꽉 쥐었다. 예전에 강서준이 파혼하겠다고 했을 때 이진아는 허락하지 않았다. 강서준이 농담으로 다리에서 뛰어내리면 파혼하지 않겠다고 했더니 그 말이 끝나자마자 망설임 없이 다리에서 강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나서야 파혼당하지 않았다. 그런데 강서준이 또 파혼하려 한다니... 이번에는 또 무슨 소동을 피우려는 걸까? 이진아는 비틀거리면서 스쿠터를 빌린 곳으로 돌아갔다. 한번 나왔다가 빚이 2천만 원이나 늘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왠지 요즘 하는 일마다 운이 없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서다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진아야, 너 돈 필요하댔지? 오늘 밤 올나이트로 올래?” 올나이트는 회암시에서 가장 유명한 술집으로 재벌 2세들이 돈을 탕진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일하면 하룻밤에 팁 수백만 원 정도는 쉽게 받을 수 있었다. “거기서 돈을 벌 수 있어?” “응. 나 어젯밤에 팁만 6백만 원 받았어. 룸에서 노는 재벌 2세들이 팁을 아주 후하게 주거든. 마침 요 며칠 내가 근무하는데 오늘 밤에 일이 있어서 나갈 수가 없어. 아무래도 아는 사람한테 기회를 주는 게 좋잖아. 오면 이 기회를 너한테 줄게.” ‘6백만 원?’ 순간 마음이 흔들린 이진아는 바로 주소를 물어 택시를 잡아탔다. 사실 그녀는 올나이트의 단골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알지 못했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얼굴 인식을 해야 했다. 문 앞을 지키는 경호원들이 받는 연봉이 매우 높았는데 그들의 업무가 바로 모든 회원들의 얼굴과 직원들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회원도 아닌 사람이 몰래 들어갔다가 재벌 2세의 심기라도 건드린다면 꽤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었다. 이진아가 나타난 순간 경호원들의 얼굴에 경멸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왜냐하면 그녀가 이곳에서 소란을 피운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에 강서준이 어떤 술집 아가씨와 가까지 지내는 걸 보고는 이진아에게 따귀를 여러 대나 맞은 적도 있었다. 결국 강서준이 화를 내자 바로 사과하면서 태도를 바꾸었다. 마치 자존심 따위는 없는 사람처럼. 한 경호원이 좋은 마음으로 그녀에게 충고했다. “이진아 씨, 오늘 밤에는 제발 문제 일으키지 마세요.” 이진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렸다.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직원 탈의실에서 서다혜를 만났다. 서다혜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이진아에게 건네주며 당부했다. “술 카트를 밀고 들어가서 비싼 술 위주로 가져다줘. 비쌀수록 팁이 높아지거든. 나중에 월급 나오면 바로 송금해줄게. 난 지금 가봐야 해서 그럼 잘 부탁해.” 이진아는 재빨리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일부 남성들의 취향에 맞게 몸에 딱 달라붙는 디자인의 유니폼이었다. 원래도 몸매가 좋았는데 유니폼을 입으니 더욱 눈길을 사로잡았다. 서다혜는 속마음을 숨기려고 재빨리 시선을 늘어뜨렸다. “자, 이제 들어가 봐. 복도 맨 끝 방이야.” 이진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잊지 않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다혜야, 고마워.” 그러고는 술 카트를 밀면서 룸을 향해 걸어갔다. 룸 안, 강서준이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차민우가 코웃음을 치더니 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웠다. “이번에는 하루 만에 돌아올 거라고 장담한다, 내가. 지난번에 서준이가 파혼하자고 했을 때 목숨까지 버리면서 뛰어내렸잖아.” “우리 서준이 매력이 도대체 뭐길래 이진아가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 걸까?” “이진아가 서준이를 좋아하는 게 이해는 돼. 솔직히 저 얼굴이면 나라도 들이댔을 거야.” 친구들의 아부에 강서준은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았다. 남자들은 체면을 가장 중요시한다. 이진아의 얼굴이 예쁜 건 사실이라 그동안 강서준을 쫓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다들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사실 강서준도 예전에는 이진아를 좋아했었다. 하지만 여자가 너무 적극적이니까 오히려 매력이 떨어졌다. 한두 번 모욕을 줬더니 오히려 강서준에게 더욱 집착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진아가 영원히 떠나지 않을 거라는 착각마저 들었다. 하여 때가 되면 알아서 돌아올 테니 달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강서준이 뒤로 기대면서 오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장담하는데 오늘 밤에 날 찾아올 거야. 이진아를 너무 잘 알아. 걔는 나 없이는 살 수 없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룸 문이 벌컥 열리더니 이진아가 술 카트를 밀면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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